묵상자료 4364호.
시편 시 88:8-10.
찬송 23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초속 5cm 벚꽃의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속도. 눈물의 속도는 얼마일까? 그 흐르는 속도, 그 마르는 속도. 여고시절에 딱 이맘때, 창밖을 보던 친구가 갑자기 울어서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눈물이 흐르는 속도는 빨랐고, 마르는 속도는 느렸습니다. 왜 우냐고 했더니, 눈이 오잖아 했습니다. 울지 말라고 했더니, 봄이잖아 했습니다. 한참 후에야 어렴풋이 짐작했던 것은 눈이 왔던 그 계절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 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마종기 시인이 <바람의 노래>에 썼던 구절입니다. 눈이 옵니다.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 봄입니다. 꽃잎 되어 날아가 버릴 겁니다. 꽃잎 되어서 아득하게 날아가 버립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4월 22일 방송>
2.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에 사는 우리들을 제외하고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곧 서울이 위태로워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을 떠나지 않고 지켜야 할 사람이며,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은 인류의 꿈입니다(1-2절).
유대인들은 새 시대를 메시야의 오심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보면, 행여 이 사람이 메시야는 아닐까 기대했던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에 대한 기대도 그런 연유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대한 두 사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그 시대를 만들자는 사상, 곧 인본주의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그 시대를 만드실 것이라는 신본주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지난 수천 년간 이 두 사상은 팽팽하게 공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했습니다. 인본주의에 희망을 걸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이 더욱 더 사악해 지고 있는 때문입니다. 그럴수록 대안은 신본주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를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하나님께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3-5절).
계시록을 통해서 전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장막을 사람들이 사는 땅에 옮겨오심으로 시작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천지개벽하듯 딴 세상으로 돌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 바로 새 하늘 그리고 새 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줄기찬 성경의 중심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바로 그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서 기자는 주님을 마음에 모시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는 거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눈물이 없는 곳이며, 아픔과 죽음이 없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애통하는 것이나 억울한 일이 없는 곳, 참 평화와 기쁨 그리고 감사가 넘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도 맛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아갈 때 말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요15:10-12).
새로운 세상은 분명 우리 주님께서 능동적으로 만드실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 나라를 위해서 일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갈 때입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을 보혜사 성령님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우리를 감동시킬 뿐 아니라, 주님의 위대한 일들을 널리 알리는 일도 할 것입니다. 그 결과 이런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삶이 조금씩 조금씩 천국의 모습으로 번져갈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주님의 말씀을 다른 목적을 위해서 팔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천국을 느끼며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을 가장 큰 은총으로 아는 삶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을 우리들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렇게 물으며 행동하면 쉽게 답이 나올 것입니다.
3. 일본의 묵상식구 양희매 목사님께서 스마트폰으로 묵상을 하셨는데, 속 좁은 제가 지난 한달동안 묵상식구 주소록에서 빼 버렸는데, 일본을 방문중인 이석윤장로님이 확인하고 알려오셨습니다. 미안한 마음 전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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