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94호 (2013. 5. 28. 화요일).
시편 시 94:5-10.
찬송 20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달마를 시조로 하는 선불교 역사에서, 다섯 번째 스승이었던 홍인 대사에게는 천여 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관례대로 여섯 번째 스승이 될 자를 작정으로 제자들을 다 모아놓고 각자의 깨달음을 벽에 써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고, 신수만 바라 봤습니다. 그는 인물도 좋고 학식과 덕망이 뛰어나서, 모두들 신수가 여섯 번째 스승이 되리라 믿었습니다. “이 몸이 바로 보리수 마음은 맑은 거울, 날마다 힘써 깨끗이 닦아야 하리라. 먼지가 앉지 않도록.” 모두들 신수의 깨달음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일자무식의 나무꾼이었던 혜능은 웃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신수가 쓴 글 옆에 이런 글을 써 달라고 다른 스님에게 부탁했는데, 그 글은 이러했습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며, 맑은 거울에는 거울의 틀이 없다. 본래 아무 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모이겠는가?” 모두들 이 글을 보고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신수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총명하며 사서삼경을 배웠고, 혜능은 글이라고는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무식한 나무꾼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인대사가 여섯 번째 스승으로 택한 자는, 신수가 아니라 혜능이었습니다. 세상의 희로애락이 나와 너, 좋고 싫음, 옳고 그름 따위를 헤아려서 판단하는 분별 심으로부터 일어나는데, 신수는 아직도 몸과 마음, 깨달음과 먼지를 나눠놓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혜능은 이미 깨달았습니다. 틀이란 없는 거라고. 본래 아무것도 없는 거라고. 그런 마음이라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그것이 마음을 닦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5월 17일 방송>
2. 안식일에 병 고치신 일화를 읽었습니다. 주님과 회당장 사이에 날카로운 설전이 벌어졌습니다. 18년 동안 허리가 꼬부라진 채 살던 한 여인을 고쳐 주셨는데, 이를 두고 회당장이 화를 내면서 일할 수 있는 날들이 많았는데, 하필이면 일해선 안 될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했느냐는 핀잔을 준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주저하지 않고 외식하는 자가 하는 말이라면서, 안식일에도 자신의 소나 나귀를 마구간에서 끌고 나와서 물을 마시게 하면서, 18년 동안 질기고 굳은 사슬에 묶여 살아온 하나님의 자녀를 자유하게 하는 것을 시비하느냐고 말입니다. 회당장의 주장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는 시기심에서 그런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지난 토요일 부산 부전 교회당에서 조카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최근 제가 참석했던 결혼식 중에서 가장 즐거운 주례사를 들었습니다. 주례자는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쓴 사랑의 편지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해설을 덧 붙여가면서 자신의 주례사의 초점을 맞춰갔습니다. 하나가 되라, 약속을 지켜라, 그리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시종 따뜻하면서 보듬어 주는 그런 매우 친절한 권고들이었습니다. 흠 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기심이 발동한 것 같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눈높이를 맞춘 나머지 위엄이나 엄숙함이 빠져버렸다는 생각이, 상담자처럼 부드럽게 다가서는 데는 성공했지만, 멘토다운 권위는 없지 않다는 생각이 머리를 치켜 든 것입니다. 아무리 정당한 비판이라고 해도, 시기심이 솟아올랐을 것입니다. 회당장과 비슷하게 우리 역시,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배우고 칭찬하는 데는 낯선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3. 아래 집 총무님께서 저의 부탁을 들어주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계분 10 포대를 비맞지 않도록 파라솔 밑에 옮겨놓으신 것입니다. 좋은 이웃들 속에서 사는 것이 고마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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