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390(2013. 5. 24. 금요일).

시편 시 92:9-12.

찬송 38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부동반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편이 기름기 많은 튀김 닭 집어 드는 걸 보고, 아내가 말립니다. 대신에 샐러드를 남편의 접시 위에 올려놓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먹는 게 좋아요.” 그러나 남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버렸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애 취급 한 것 같아서 화가 났거든요. 아내가 컵을 엎지르는 바람에 친구 부인의 스커트가 젖었습니다. 남편이 대신 사과한다면서,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미안해요. 이 사람이 좀 얌전하질 못해서.” 아내의 얼굴이 불그 푸르락해졌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망신준 거 같아서 화가 났습니. 그리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이었어. 남편의 손이 자꾸만 아내의 허벅지를 긁습니다. 아내가 야멸차게 남편의 손을 밀어내자, 남편이 머쓱해 하면서 말합니다. “, 내 다리인줄 알았지. 어쩐지, 아무리 긁어도 시원하지를 않더라.”

   남의 건강이 아니라 남편 건강이라서, 튀긴 닭보다 샐러드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남의 실수가 아니라 아내의 실수라서, 편안하게 핀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배우자의 생각이나, 배우자에 대한 배려는 빠져 있고, 자기 마음대로 처리했습니다. 부부싸움의 대부분이 그렇게 시작됩니다. 내 남편이라서 내 아내라서, 우린 세상에서 제일 편한 사이라서. 그러나 내 다리가 가렵다고 남의 다리를 아무리 긁어봐야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서로의 욕구를 대신 채워줄 수 없으며,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배우자의 진가는 나와 같은 점이 아니라 다른 점에 있고, 결혼의 경이로움은 이렇게 다른 데도 함께 살아가는데 있을지 모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521일 방송>

 

2. 휴가를 나온 젊은이가 충성!”이라고 거수경례를 해 왔습니다. 갑자기 스물 셋 옛날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입대했을 때는 3년이라는 시간이 까마득하고 지루하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학시험에 계속 낙방하던 끝이어서인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이 솟아서인지, 생각보다는 단조롭거나 힘겨운 시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무엇보다도 충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국에 충성, 겨레에 충성, 부모에 충성 그리고 나 자신에게 충성이라는 의미를 말입니다. 그래서 충성하는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말뚝을 박을 거냐는 우려 섞인 충고를 들을 정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뜻밖에도 많은 수확을 안겨주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충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깨어 있는 종들처럼 말입니다. 주인집의 일을 지혜롭게 관리하는 청지기처럼 말입니다. 깨어 있는 종들은 언제나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주인의 귀가를 기다림만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넉넉히 헤아릴 줄 아는 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한 주인의 뜻을 잘 알아서, 묵묵히 제 맡은 일을 성실하게 짊어지고 일하는 가솔(家率)들을 자비롭게 살펴주는 청지기라면,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울까요? 그러나 우리 주변의 청지기들은 마치 주인이 된 듯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 재산을 제 마음대로 쓰는 것도 부족해서, 큰 소리까지 질러댑니다.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인의 뜻과는 너무도 다르게 말입니다. 어느 한 순간도 주님이시라면 어찌하실까?” 이런 생각은 할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다시금 충성!”이라는 인사말을 사용하자고 제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