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467(2013. 8. 9. 금요일).

시편 시 109:11-13.

찬송 2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엄마와 딸이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마침 그 프로그램에도 모녀가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인기 여자 연예인과 그녀의 어머니였지요. 부모님이 진 빚도 집도 사드렸다는 인터뷰가 나오자, 엄마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쟤 너하고 동갑이 아니니?” 어쩐지 불길한 예감과 함께 그렇다고 하자, 아니나 다를까, 한마디 하십니다. “쯧쯧쯧, 근데 어쩜 이렇게 다르니?” 맙소사. 엄친 딸도 모자라, 이제는 연예인 하고도 경쟁해야 하다니, 정말 피곤한 세상입니다.

사람은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을 따라하며 배우기 마련인데, 요즘 세상엔 그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이 아무래도 연예인인 모양입니다. 그들의 외모나 부와 인기는 온 국민이 알게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생중계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도 적지는 않습니다. 시급 5천원 아르바이트를 하루 종일하고 들어왔는데, 아버지가 류현진 선수는 1년에 67억 넘게 번다며?” 하시는 물음에, 괜히 성을 냈다가 혼만 났다는 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디 이런 비교로부터 의연해야 합니다.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폴 메카트니는 이런 허상을 꿰뚫어본 스타였습니다. 이런 인터뷰를 했었지요. 메카트니는 자기 이름을 딴 별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대중적인 스타와 나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어요. 스타로써의 업적에 대해서는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때로는 감격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면서, 난 내 이름을 딴 행성도 있지 라고 하지 않아요. 난 여전히 리버풀에서 버스를 타고 다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비교하거나 경쟁해야 한다면, 모든 것을 가진 스타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딴 별까지 가졌음에도 변함없고자 했던, 그 인성이 아닐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718일 방송>

 

2. 샌프란치스코 신학대학의 학장을 역임하였던 도널드 맥컬로우는 [내가 만든 하나님]이란 책을 써서, 이 시대의 기독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바 있습니다. 그는 책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성경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비위나 맞추는 하찮은 하나님을 만들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 그 하나님이란 인간의 목적에 맞는 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신”, “인간이 체험한 신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의 필요에 응하고 인간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신을 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신(우상)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한 사람이 링컨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북쪽 편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남쪽 편을 들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링컨의 대답은 하나님이 어느 편에 서 계시는 가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하겠지요.” 얼마나 훌륭한 대답입니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전하겠다고, 그것도 성령의 인도로 출발한 유럽 선교는 빌립보를 시작으로 가시밭길의 연속입니다. 두들겨 맞고 쇠사슬에 손과 발이 묶인 채 감옥에 갇히더니, 간신히 데살로니가로 나왔는데, 이제는 깡패들을 동원해서 테러를 감행하려고 합니다. 거기에는 유대교인들이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잘못 알고 있었던 때문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메시아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야를 기다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이토록 힘들게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묵상식구 임재선 목사님이 베트남 다낭지역을 중심으로 지도자를 육성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에서 추방되셨다고 합니다. 수년간 구축해 놓으셨던 선교 기지가 한 순간에 무너질 때, 그 아픈 가슴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 잘 감당하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시련이 주는 교훈은, 세상이 얼마나 복음을 거부하는지, 아직도 세상은 하나님 보다는 인간 중심으로 살고 싶어 하는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서, 낯선 곳을 향해 머리를 돌리는 그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고 계심을,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가 바로 그런 길을 걸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을 환영하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보내시고 있습니다.

 

3. 똑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만을 주목하는 성경해석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심리학적 접근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인간의 공로와 행위에 초점을 두는 잘못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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