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472호 (2013. 8. 14. 수요일).
시편 시 110:4-7.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느냐 와는 별개로, 탐색전 같을 때가 있습니다. 착하고 좋은 사람인지, 진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 그렇지 결정적으로 내 인생에 도움이 될 사람인지 아닌지. 내 눈을 믿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 어떤 사람인 것 같냐고 물어볼 때도 있습니다. 도움이 될 때도 있고, 더 헛갈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아버지와 평생을 살아도 모르겠더라. 사람 속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니?”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이 알고, 가까이에 있으면 잘 알 것 같아도, 현미경을 들이대고 보는 것과 비슷한 현상 이 생길 수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까, 그곳이 대체 무엇인지 더 알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요. 한 번도 하얀 눈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현미경으로 확대한 눈의 결정체를 보여준 들, 과연 겨울에 내리는 그 하얗고 차가운 것이 눈인지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요. 다른 사람의 평가나 객관적인 조건이 아니라, 스스로의 직관과 신뢰가 중요합니다. 관계란 새롭게 열리는 또 다른 세상이고, 그 세상에선 서로의 느낌과 신뢰가 가장 큰 밑거름입니다. 물론 그렇게 시작된 세상이 모두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맞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한 번도 그런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다면, 그것이 더 가난한 인생 아닐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년 7월 25일 방송>
2. 신학이나 교리에 대해서 무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학이나 교리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학에서 말하는 공식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대한 성경 안에는 가끔 서로 부딪히는 구절들도 있고, 오해하기 쉬운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문자적으로는 훌륭한 내용인데, 그 배경에서 살피면 모욕적인 내용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신학이나 교리가 없다면 당연히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가령 우리 한국 기독교인들이 개업을 할 때 선물 1번은 욥 8장 7절이 쓰인 액자라고 하는데, 이 구절은 욥의 친구 빌닷의 말로, 그 배경은 욥이 당한 시련을 욥의 죄 때문으로 규정하고, 비웃는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을 순수한 덕담이나 진심을 담은 기원의 말이 아니라, 야유와 비꼬는 뜻으로 했던 말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글자 자체만이 아니라, 그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빗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에베소 지방의 기독자들이 요한의 세례 곧 물세례만을 알고 있을 뿐,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의 세례가 의미하는 죄의 씻음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교회는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구별하려는 해프닝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가 무엇인가? 세례의 의미와 세례의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신학을 알지 않을 때, 빚어지는 오류라고 하겠습니다. 세례는 단순히 죄를 씻는 의식만이 아니라, 죄에서 승리하는 새 삶을 의미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에 죽고 의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날마다 기억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의 형상화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보증해 주는 것이 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시행된 세례로, 이는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총이라고 말입니다.
3. 저의 강의 제목은 <예배학 개론>입니다. 한국에서 한 학기 내용을 사흘에 줄여서 강의하는데, 그래도 강의 초록을 번역해서 참고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오늘 오후 6시에 강의를 마치면 저의 임무는 끝이 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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