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4522(2013. 10. 3. 목요일).

시편 시 119:97-100.

찬송 37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탁소에서 세탁한 옷을 배달해 주겠다는 전화를 받고, 미리 돈을 챙겼습니다. 지난번에도 지갑을 찾느라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돈을 지불하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돈을 따로 챙겨서 어디엔가 두었는데, 끝내 찾지 못해서였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던 돈은, 다음 날 외출하려고 신발을 신다가 발견했습니다. 돈은 신발장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이제야 찾으셨어요?” 비웃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런 건망증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누군가는 장보러 갈 때마다, 꼭 사야할 품목을 빠트리곤 해서 적기로 했는데, 적으면 뭐하냐고, 그 종이를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그냥 간다며 웃습니다. 한 때 최고의 기억력을 자랑했던 부장님은 어떤 가수 이름 하나 기억해 내기 위해, 그 시대 유행가들을 총동원하고, 어머니는 손자들 이름을 예사로 바꾸어 부릅니다.

   지난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해, 찾아다닐 때 마다 쏟은 땀도 꽤 됐습니다. 그럴 때면 혹시 치매 전조증상은 아니냐는 걱정은 둘째 치고, 건망증 때문에 겪는 생활의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그만 우울해지고 말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건망이라는 글자의 뜻을 알고 나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건망을 한자로 쓰면, 건강할 건() 잊어버릴 망(), 말 그대로 건강하게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스트레스가 심할 때, 유독 기억을 끄집어내는 회로가 깜빡거리는 것도, 사실은 건강하게 잊어버리는 것.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더 이상의 혹사를 거부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럴 땐 건강하게 쉬어주는 일이 가장 필요한 조치일지도요. 그 후에는 나의 뇌를 전적으로 믿어주기 보다, 기억을 불러내는 나름대로의 규칙을 세우는 것도 좋습니다. 물건을 정해둔 위치에 꼭 두거나, 휴대전화의 메모장 기능이나 알람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3926일 방송>

 

2. 자신을 변호하는 일보다도 더 딱한 일은 없을지 모릅니다. 그것도 자신의 진심이 오해될 때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사도라 여기지 않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속셈이 무엇인가 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1-3). 다른 전도자들과는 다른 모습 때문에 더욱 그런 오해의 골이 깊어졌던 모양입니다. 가령 사도 베드로는 부인을 데리고 전도하러 다녔고(5), 생활을 위한 사례를 받을 권리까지 포기하였기 때문입니다(6-11, 13). 그래서 도대체 더욱 더 낯설게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득 불 마음을 풀어헤쳐 놓고 오해를 풀려고 했는지 모릅니다.

   사도는 소위 자비량 목회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되 자신의 생활비를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충당하는 목회방식 말입니다. 저도 바울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 그래서 교직과목을 공부해서 교사 자격증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부산에서 개척을 할 때, 어느 학원 재벌 장로님 내외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교감 대우를 약속하며 교목실장을 제의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자급 목회에 대한 꿈이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했었습니다. 그런데 자급목회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학교에 적을 둔 목사님들이 한결같이 말렸던 것도 한 몫을 했습니다. 그 때 제가 스스로 생활비를 벌면서 교회를 지도했다고 한다면, 아마 교회는 포기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게 급여를 주는 학교에서 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그 자급목회를 은퇴 후로 미루었습니다. 한 지역 교회를 섬기는 자급목회가 아니라, 사도처럼 지역 교회를 섬기는 지도자들을 섬기는 그런 자급목회를 하리라고 말입니다. 그동안 6차례 그런 식의 목회를 실험적으로 경험했는데, 그 확신을 더욱 굳혀 주는 것 같습니다. 그 목적은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도의 말이 공감을 주는 때문이며(12), 그것이 참으로 자랑스럽기 때문입니다(15).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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