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43호(2019. 7. 25. 목요일).
시편 25:14-18.
찬송 22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책에서 워홀은 아름다운 론의 첫 구절을 그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미인이 아닌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아름다움을 다루는 화가이고 화려한 사교계의 명사다 보니까, 역시 아름다운 여인만 만나나 보다 싶지요. 하지만 그 글에서 앤디 워홀이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번은 아름다운 때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외모 때문이 아니겠지요. 사람만의 개성이나 열정 밝음 같은 것들 때문에,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기가 찾아들지요. 그러니 미인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러니 살면서 미인이 아닌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문득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언제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미인이었던가. 혹시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인데, 오히려 나는 나이도 많고 아름답지도 않고 잘 하는 것도 없고 다 못났다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에 앤디 워홀이 지금의 자신을 봤으면,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보내는 중이시군요.”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지. 오늘은 앤디 워홀의 한 마디 “나는 미인이 아닌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자기 인생의 한 시기에 어떤 관점에서건 아름다움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 한 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7월 6일 방송>b.
2. “누가 제일 높으냐?(24-27절)”과 “제자들이 받을 상(28-30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체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공관복음서에서 두 번 언급된 특별한 말씀입니다(마 18:1-5, 막 9:33-37, 눅 9:46-48/ 마 20:25-28, 막 10:42-45, 눅 22:24-30). 제자들 사이에 벌어진 누가 높으냐는 이른바 자리다툼의 문제를, 주님은 높은 자리란 섬기는 사람 낮아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하늘의 진리를 강조하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묵상은 두 번째 단락 “제자들이 받을 상”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상을 받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황혼녘에 이르고 보니 저 역시 내가 평생 일궈온 삶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받을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런데 내세우고 자랑할 만한 상이 없을 것 같습니다. 햇수만 채우면 주는 그런 흔해 빠진 상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이런 저의 심정을 잘 대변하는 것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 역시 과연 우리는 무슨 상을 얻겠다고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자주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대답을 하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어록(語錄)인 Q자료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선 30절의 전반부 천국에서의 식탁 예고는 Q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마태에는 없고 누가에만 있다는 점이 특이하고, 개역 개정판에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릴 것이다.” 대신, 공동번역판에서는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 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먼저 열두 지파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보다 넓게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모든 민족 모든 사람들을 망라한다 하겠습니다. 문제는 “다스릴 것이다.”냐 “심판할 것이다.”냐 입니다. 본문에서 사용한 κρινοντες는 “구별한다. 심판한다. 결정한다. 단죄한다.” 등의 의미를 가진 κρινω의 현재 능동태 분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사는 신약에서는 주로 심판이나 단죄와 같은 법정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 두 지파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심판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나라에서 하나님을 보좌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수직적 서열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수평적인 자기 역할을 분담할 것이라 하겠습니다. 천국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평등과 평화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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