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45(2019. 7. 27. 토요일).

시편 26:1-4.

찬송 13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결국 다시 찾은 곳이 텔레비전의 스포츠 채널 앞이었습니다. 그동안은 그쪽으로는 일부러 일체 고개도 눈길도 주지 않았지요. 상처받는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열심히 피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운동에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이 다 들어 있지요. 그러니 가장 큰 위안과 해결책도 거기에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가가보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선수입장에서 볼 때와는 참 많이 달랐습니다. 조금만 더 뛰면 충분히 홈인데, 조금만 더 적극적이었으면 충분히 잡았을 공이었는데, 연습과 노력의 증거들이 순간순간 다 보였습니다. 승패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이나 경기 자체가 스스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롭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고 시시한 경기가,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지만 부상을 조심하느라고 아무도 열심히 안 뛸 때의 올스타 경기라고 말하는거겠지요.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운동을 그만두고 맞닥뜨릴 새로운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하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또 다른 관중에게 가장 떳떳하고 당당할 수 있는 길이 아닐찌. 오늘 그의 마음은 스포츠에서 관중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팀이 이기기를 바라지만, 경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한, 자신의 감정적 투자나 시간이 전적으로 낭비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패배보다 팬들을 더욱 실망시키는 것은, 적극성과 노력의 부족으로 인한 지루함이다.” 한스 굼브레히트의 한 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79일 방송>b.

 

2. “감람산에서 기도하시다(39-46)”잡히신 예수(47-51)”을 읽었습니다. 감람산에서 하신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란 이렇듯 절실하고 간절해야 한다는 것을 늘 깨우쳐 줍니다. 오늘은 두 번째 단락 잡히신 예수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저는 저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나왔던 명화(名畫)들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감상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대해서 참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를 대학에서 가르치신 한 역사 교수님은 미국 유학시절에, 거의 매 주말마다 극장에 가서 영화나 연극을 보곤 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연극이나 영화처럼 기승전결(起承轉結)이 거의 완벽하게 꾸며진 것은 없다며, 그런 영화의 내용과 구조를 신학용어로 바꾸기만 하면 훌륭한 논문이 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아무튼 저는 영화 감상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얻곤 합니다. 이렇듯 장황스러운 서두를 꺼낸 까닭은, 불법을 저질러서건 정의를 위해서건 군인이나 경찰에 붙들려가는 일들이 영화에서는 자주 소재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여러분들은 살아오면서 경찰에 소환되어 본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는 다행히 그런 일이 없었지만, 저의 부친이 공산당에 의해서 사형수의 한 사람으로 트럭 앞까지 끌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밤중에 은밀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족들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그 위기일발의 자리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으셨다 회고 하셨습니다. 감람산에서의 기도를 마치신 주님은 가룟인 유다의 안내로 밀어닥친 제사장의 사병들에게 붙잡히셨습니다. 그것은 가룟 유다가 입 맞추는 분이 예수임을 사전에 짜 맞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범죄자 다루듯 주님을 거칠게 대하였고, 제자 중 한 사람이 칼을 뽑아 그 병사의 귀를 내리쳐 떨어트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떨어진 귀를 다시 제자리에 붙여주고는, 그만해라고 말리셨습 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엄청난 폭거를 당하신 주님께, 칼을 뺀 제자의 행동이 조금은 위안이 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귀를 떨어트리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으셨으니 말입니다. 귀를 떨어트린 사건에서 무슨 영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충분히 목을 떨어트릴 수도 있는 칼이었는데 말입니다. 귀는 입과 손처럼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없는 신체중 하나입니다. 누군가가 소리를 쳐야 그때 들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귀가 우리 신체의 평형감각을 유지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혀졌습니다.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이명(耳鳴) 현상이 그것입니다. 주님을 체포하려는 군인에게 귀를 떨어트리게 한 것, 그것은 그 군인 당사자 뿐 아니라 세상이 온통 균형감각을 상실했다는 현실을 지적하신 것이고, 그 심각한 질병을 주님께서 고쳐주셨다는 의미라고 말입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곁가지에 심취, 본말(本末)을 흐리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관찰임에는 확실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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