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47(2019. 7. 29. 월요일).

시편 26:8-12.

찬송 41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글과 말속에서 마음을 일렁이게 만드는 한 마디와 함께 하는 <그 한 마디에 물들다>. 오늘은 미국의 소설가인 브레드 바클리와 해드 해플러 두 남녀 소설가가 쓴 함께 슨 [자정에 먹는 스크렘블드 에그] 속의 한 마디입니다. “내 생각에 신은 스낵 한 봉지에 있고, 스낵에 대한 농담을 하며 웃을 때도 같이 있어. 신은 웃음 속에 존재하는 거야.” 이 한 마디에 물들어 봅니다. 한 직장인이 동창생들만의 게시판에 급하게 글을 올렸습니다. 누가 빨리 재미있는 유머 얘기를 세 가지만 알려달라고요. 그는 평소에 말도 거의 없고 늘 무표정하지요. 그러면서 열심히 일만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부장님보기에는 좀 딱해 보였던 걸까요. 하루는 부장님이 그를 지목하곤 명령하듯 말합니다. “자네 오늘은 일 안해도 되네. 대신 있다 오후 5시까지 사람들 전부 다 웃어 넘어갈 만한 재미있는 얘기 세 가지만 알아 노시게.” 라고요. 보통 사람 같으면 신이 났겠지요. 재미있는 농담 세 가지로 하루 휴가를 얻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그는 울상이 됐습니다. 재미있는 얘기라고는 하나도 아는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다급히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710일 방송>a.

 

2.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52-62)”를 읽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실수나 실패에 대한 변명으로, “잘 몰라서.” 라거나 처음이어서와 같은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윤리적인 문제라면, 수년 동안 되풀이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웠습니다. 해야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에 관해도 말입니다. 그리고 학교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성인이 된 다음에는 앞서의 변명들이 궁색해져야 당연합니다. 다시 말하면 뻔히 잘 알고 있으면서 습관적으로 잘못을 저지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법정은 초범이라는 사실을 크게 부각시켜서 죄를 눈감아주곤 합니다. 본문을 읽을 때마다 베드로는 적어도 세 번의 수난 예고를 들었을 테니, 주님이 오랏줄에 묶여서 잡혀가는 것을 낯설게 생각했다 말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 앞에서 당황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그동안 주님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의 말처럼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베드로 앞에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베드로의 착각 때문에 일어난 일일 뿐,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부인 사건은 분명히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 자신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불과 하루 전에 직접 들은 말씀이었기 때문에, 기억 탓도 할 수 없고, 잘 모른다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반드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을 똑똑히 들었으니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문제는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는 걸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예상된 문제를 받아든 인생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말씀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고, 그날 할 일은 그 날 마치라는 말씀도, 항상 신중 하라는 가르침도,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마음에 다짐도 하고 굳게 약속도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 부인한 것처럼, 우리들 역시 부모님의 말씀이나 선생님의 훈계를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무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진지하게 물어봐야 하겠습니다. 어찌하여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가 하고 말입니다. 베드로를 포함해서 우리가 흠모해 마지않는 아브라함과 다윗까지, 한결같이 어리석고 잘못된 길에 들어섰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나 수양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문제들의 한복판에는 죄악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 힘과 의지로 이겨낼 수 없는 죄악이 말입니다. 죄악이란 목표를 빗나가는 모든 생각과 행동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마귀의 세력이 버티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잠시 잠깐 동안에라도 마귀의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가 버린 바로 그 순간에 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성령님을 거부하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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