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49호(2019. 7. 31. 수요일).
시편 27:4-6.
찬송 9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4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계셨는지요. 그리고 어떤 책을 읽으셨는지요. 2004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작가는 파울로 코엘료였습니다. 파울로 코엘료는 1947년 8월 24일 브라질 리우데자일로의 안정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30대 후반까지의 인생은 파란만장 그 차제였지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에 심취해 작가를 꿈꾸었습니다. 17살 때에는 음악 연주와 연극에 심취했다고요. 그러니 누구보다 일찍부터 천재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을 구가하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가를 꿈꾸는 그와 그 꿈을 반대하는 부모님 사이의 불화는 크고도 심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는 세 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대 때에는 만화잡지를 창간했지만, 잡지 성향 때문에 오히려 고문을 받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코엘료는 줄기차게 작가를 꿈꾸었지요. 서른다섯 살인 1982년 마침내 첫 소설인 [지옥의 기록]과 [흡혈귀의 실용 매뉴얼]이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문단도 대중도 아무도 주목해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다 한들 그는 당시엔 유명 음반회사의 중역이었지요. 그러니 무명 작가여서 생활고를 겪는다든지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7월 11일 방송>a.
2. “빌라도의 심문(1-5절)”과 “헤롯의 심문(6-12절)”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은 산헤드린 앞에서 종교 재판을 시작으로, 로마 총독과 허수아비 분봉왕 헤롯의 심문까지 3차례나 심문을 받은 것입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3심제(지방, 고등, 대법원)를 채택하고 있는 현실과는 달리, 주님은 각기 다른 시각을 가진 세 사람에게서 심문을 받은 것입니다. 의미가 있다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재판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속전속결로 대충 해치우는 인민재판에 비하면 훨씬 더 공정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재판은 나름 특징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의 관심사는 메시야 여부를 심문하였는데, 빌라도의 재판에서는 로마에 세금을 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칭왕이라고 허세를 부린다는 죄목이었습니다. 헤롯의 재판은 세간에서 떠도는 소문들, 병자를 고치고 신기한 기적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역시 관심사는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보고 싶은 것을 보려고 하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려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자기라는 굴레 안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중심적이라는 틀 안에 갇히고 만다는 말입니다.
먼저 총독 빌라도의 재판을 살펴봅시다. 총독의 관심사는 자신의 통치 영역 안에서 사건 사고가 나지 않아야 합니다. 무사안일이 대부분의 통치자들의 희망사항입니다. 그리고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서 본국에 실적을 많이 올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성공한 지도자가 되고, 그 보상으로 더 큰 지역의 총독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내심 예수가 나라를 시끄럽게 만드는 반란군의 괴수이기를 은근히 바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력한 로마 군대로 진압하게 되고 그 업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빛낼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행색의 초라함과 그 눈빛의 선함을 보자마자 크게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전의(戰意)를 불태울 만한 대상이 못된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둘러 헤롯에게로 떠넘겨버립니다. 헤롯은 명색이 왕이긴 하지만 허수아비일 뿐이었기에, 정치적인 관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신비한 종교현상을 구경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관심사에서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묵비권을 행사하는 예수에게서 흥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만 빌라도와 경쟁자 의식을 가지고 대면 대면하였는데 이 이로 친해진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고 누가복음서 기자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떤 관심의 대상입니까? 반란을 일으킬만한 인물입니까? 아니면 신비현상을 연출하는 마술사입니까? 아니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하러 오신 구세주이십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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