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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5.04 [2025. 5. 4. 부활절 셋째 주일] 믿음의 길. / 요 21:1-14.

묵상자료 8753.

시편 119:7-9.

찬송 34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소위 성공이나 출세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행복이란 깊이 느낄 줄 알고, 단순하고 자유롭게 생각할 줄 알며, 어려운 일에 도전할 줄 알고, 남에게 필요한 삶을 살려는 그런 것들이 행복이다. 행복은 우리 마음 안에 있으며, 먼 훗날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누려야 하는 것이다.” 윤문원, 지혜와 평정, p.167.

 

2. 부활절 셋째 주일의 복음서 요한복음 21:1-14을 본문으로 믿음의 길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일곱 제자들은 옛 직업인 어부의 삶을 살려고 갈릴리 호수로 나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사건의 산증인들인 제자들이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1-5).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세상에 계실 때(1:3), 제자들은 주님과 동거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대목 중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제자들은 각기 옛 생활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써 훈련을 마친 다음이니까 생활현장으로 가는 것이 당연했을 것입니다. 제자훈련의 기회는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반드시 일상생활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변모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만나실 때, 제자들은 초막 셋을 짓고 신앙공동체를 이루어 이상/理想 사회를 만들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은 분리해선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10계명은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 되는 하루만 예배 생활을 허락하셨던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신앙생활이란 건강한 일상생활로 연결되어야 옳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짊어진 일상생활은 누구나 힘들고 고달픈 것입니다(6-8).

예수님과 동행하였던 열 두 제자들은 천국복음으로 행복하였고,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는 체험 신앙을 강조하곤 했습니다. 방언과 신유체험 그리고 천국을 여행하는 신비체험도 했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과 비교할 만한 체험신앙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을 고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하였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는 기적들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체험신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마주한 일상생활은 힘들었고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는 깨닫고 배워야 합니다. 모든 신앙 체험이란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야 가능한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편과 처지이든지 하나님의 은총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은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복된 삶입니다(9-14).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셔야만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혜나 권세 그리고 세상의 물질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신앙을 최고의 보물로 믿어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대로 진행하시고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음도 믿어야 합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께 주목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연약한 존재라는 것, 우리가 어리석고, 무력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믿음의 길입니다. 문제는 제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교만을 내쫓아야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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