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70호(2019. 8. 21. 수요일).
시편 31:17-20.
찬송 48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이 우주에 제 멋대로인 힘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이 구속되어 있는 가장 강한 운명의 굴레는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작가 제임스 앨런은 신비의 문인으로 불립니다. 그는 1864년에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미국으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성장했고, 38살 때 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그 때 앨런은 영국 거대 기업의 비서로 일하고 있었는데, 톨스토이의 글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소비적인 삶이 의미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 후에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 남서부의 연안에 있는 작은 마을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10년 동안 성경과 불교 경전을 읽으며 묵상과 사색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30대 후반까지 치열하게 사회생활을 했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으면서 불교 경전에 두루 섭렵하는 동안, 그가 성찰한 운명이라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이 우주에 제멋대로인 힘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이 구속되어 있는 가장 강한 운명의 굴레는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사람들이 그 굴레에 매어 있는 건, 그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그 굴레를 사랑하기 때문이며, 작고 어두운 자아의 감옥이 쾌적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 감옥을 떠나면 진실하고 소유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잃을 거라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규정짓는 게 사실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헤르만 헷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이 글과도 닮았지요. “운명과 기질은 같은 개념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의 정체는 운명이 아니라, 기질일지 모릅니다. 기질대로 선택하고 기질대로 행동하고, 기질대로 쉽게 혹은 어렵게 생각하거나 살아가고 말이지요. 그리고 기질적인 특징은 어느 정도 부모로부터 유전된다는 것은 것을 특징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벗어나기 힘들고 운명의 다른 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린 자신의 기질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아주 먼 옛날의 철학자 에피테투스가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먼저 자신의 기질을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이 길에 적합하기 않거나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면, 헛된 생각에서 벗어나 보다 현실적인 다른 길을 걸으라. 그대의 모습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이 되려고 하는가? 현재 그대가 가진 능력을 넘어선 어떤 것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결국 감상에 젖어 장난삼아 하는 사람밖에 되지 않는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년 10월 7일 방송>
2. “다윗과 아비가일(23-44절)”을 읽었습니다. 같은 표제어의 어제 말씀을 전편이라고 하면, 오늘 말씀은 후편이 되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지혜는 없을지 모릅니다. 아비가일은 그 지혜의 눈으로 다윗의 됨됨이를 꿰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혜안을 가진 것은 결코 우연이나 요행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생활 조건 속에 살고 있을지라도, 시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거나 역사의 의미를 진지하게 살피는 사람은 아주 다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 때문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 앞에 엎드려 남편의 어리석음을 그의 이름 (미련한 자/나발)으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한낱 미련한 사람을 죽여 피 흘리는 일은 또 다른 미련한 일인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아비가일이 다윗을 관찰한 지혜의 말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다윗을 축복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며, 둘째 다윗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하나님을 위한 싸움이라는 점, 셋째 다윗이 지금까지 행한 일에서 악행은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 넷째 하나님께서 생명싸개로 다윗의 생명을 보호해 주고 계시다는 점이 그것들이었습니다. 도망자 신세의 다윗에게 이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 그리고 용기를 주는 말이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면 한 마디 한 마디가 공치사를 하거나 빈 말이 아닌 진실의 말이라는 점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대답합니다. 너를 내게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네 지혜를 칭찬하고 네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열흘이 지났을 때, 나발은 죽게 되고, 다윗은 지체 없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다윗을 열렬히 사랑한 두 여인 미갈과 아비가일, 그러나 다윗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아비가일이었습니다.
3. 어제는 옥포대첩 기념관과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기념관, 청마기념관 그리고 맹종죽 테마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역사와 문학을 공부하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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