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695.

시편 35:20-22.

찬송 14, 233, 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똑 같은 재료라도, 누가 어떻게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서, 음식의 맛이 전혀 다릅니다. 시간 요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똑 같은 하루 24시간도, 자신이 어떻게 버무리고 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지요. 오늘도 내일도 짭짤하게 알차게 즐겁게 요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 맛이 어제와 다르지 않을까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141215일 방송>

 

2. 성령강림절후 열셋째 주일의 복음서의 말씀 눅 15:1-10을 읽었습니다. “진실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망각처럼 편리한 방어기재(defence mechanism)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난처하면 간단히 사용할 수 있고, 쉽게 모면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려 좋은 것과 결코 잃어서는 안 될 것을 구별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잃어버려도 무방한 것들은 잃어버린 대로 두는 게 좋겠습니다(1-4, 8).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잃은 양과 잃은 동전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세리와 바리새인 그리고 서기관들이 함께 모여 있는 흔치 않은 자리에서라고 합니다. 내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오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것들은 재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명예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존감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을 잃고는 너무 괴롭고 억울했습니다. 꼭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찾은 것도 있고 찾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을 지나고 보니 그런 것들은 매우 하찮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했던 것처럼 중요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일찍 포기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애석해 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들은 끝까지 찾아야 하겠습니다(7, 10).

그런데 주님께서 하시는 잃어버린 것들은 전혀 다른 것들이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양과 잃어버린 동전은 죄인을 빗댄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재물도 명예도 그리고 자존감도 아니라,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었습니다. 그것도 죄 가운데서 살다가 영원히 죽게 될 불쌍한 한 생명이었습니다. 요즘 저는 제 주변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제 처지가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생각되어선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갈수록 심각한 죄를 지으며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생계형 범죄자보다는 지능적 파렴치범이 증가하는가 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세도가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살고 있는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실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향해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5-6, 9).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그리고 우리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잃어버린 정말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엉뚱한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낭패입니다. 그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교회가 이 특권을 포기해 버렸다는 현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주목하는 게 정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슬퍼하고 절망합니다. 바로 이럴 때 교회가 엉뚱한 것에 발이 묶여 있다면,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처럼 껍데기만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냉장고를 채울 생각, 통장 잔고를 느릴 생각이 고작입니다. 세상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넓은 사랑에 눈뜨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 가난이든 질병이든 그리고 어떤 시련이든 간에, 하나님은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맞으시려 기다리시고 있는데 말입니다.

 

3. 저는 오늘 <좋은 소식 시각장애인교회>에서 설교를 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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