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면 장로님으로 장립하신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꼭 참석해서 감사의 기도와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편지로 대신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L 장로님.
장로님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8년 제가 시작한 부산 YMCA 성경반에 등록을 하셨습니다.
그때 장로님은 부산 송도의 맹학교 학생으로 비탈진 기숙사에서 생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명석한 두뇌로 대구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셨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저를 찾아 부산 YWCA로 오셨습니다.
그땐 제가 아주 잘 나가는 성경교사로 이곳저곳 불려다니던 때였는데,
부산 YWCA에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곤 몇 마디 인사 후에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맹인은 누가 인도해야 합니까? 맹인입니까? 아니면 정상인입니까?
뒷퉁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부산 YWCA에 맹인 대학생을 돕는 자원봉사그룹 <등불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4차례의 맹인 대학생을 위한 자원봉사자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1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대구대학교 맹인 학생 10명과 결연을 맺었지요.
그 맹인 학생들은 훌륭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건실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열명 학생들 중에 저를 다시 찾아온 분은 장로님 한분이었습니다.
대구 옆에 있는 경천의 대구대학 점자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시는 것과,
부산 맹인 복지관에서 일하실 때에도 저를 기억하면서 기도해 주셨지요.
특히 25년이란 세월동안 설날과 추석이 다가왔다는 첫 신호로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구나 부산에서 강습회를 인도할 때면
꼭 숙소로 찾아오셔서 근황을 얘기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L 장로님,
장로님은 제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말끝마다 감사합니다는 말을 붙이고 사시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장로님은 세상을 보는 제 눈을 띄워주신 분이십니다.
제가 장애인 목사들을 위한 강습회를 네 차례나 열 수 있도록 힘을 주신 분이고,
지금 인생의 황혼 녘에 농인 교회와 맹인 교회에서 매달 한 차례씩 설교할 수 있는 것도,
모두 장로님이 깨우침을 주셔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말씀 하나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 동성애자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교회에 가서 한 달에 한 차례씩 설교자로 나서고 싶습니다.
많은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아직은 한번도 그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없습니다.
아주 오래 전 샌프란치스코를 아내와 여행했을 때,
동성애자들 마을을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저 호기심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교회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너무 박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많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흡연이나 마약 심지어 노름이 고치기 힘든 질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부까지 나서도 그들을 도와 주려고 병원도 세우고 이런 저런 시설도 운영합니다.
그런데 정작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냉담하기 그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동성애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것,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범죄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미풍 양속을 헤치는 일이고, 사회 질서를 헤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동성애 역시 질병의 하나라고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구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선 그 질병에서 벗어나기 전에, 해야 될 일이 있다고 말입니다.
한 인간으로써 정당한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L 장로님.
저는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면 누구를 찾으실까를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나, 유명 정치가나, 대 부호들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 가난한 자들과 병든자들을 찾으실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중에는 이런 동성애자들도 당연히 포함된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의 사랑의 대상이고 구원의 대상이라는 점도 확실합니다.
그들에게는 지금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하는 아픔이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고 싶어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교회 마저도 그들을 악마 사탄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잘못입니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 저에게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동성애자들 역시 자신에게 수도 없이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선택한 일이 아닌 질병인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차별하는 여자로 태어나거나, 소아마비 증세를 갖고 태어나거나,
각종 질병을 안고 태어나는 것이그 본인의 문제입니까?
부모나 사회가 함께 떠 안을 문제이며 함께 풀어가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동성애자들의 현실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우선 그들을 위한 교회가 있는지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있다고 한다면 몇 번 출석해 보고 계획을 구체화 시키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L 장로님.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 것을 저는 감사합니다.
다행히 몸과 마음이 늘 분주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마음에 빈 방이 많이 있고 넓어서 품고 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혹시 제가 이 일에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면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르긴 해도 그들의 삶의 자리가 굉장히 고단할 것입니다.
일반 장애인들은 정부 차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이 분들에게는 그런 혜택은 고사하고 차가운 눈길 뿐일 테니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입에 발린 몇 마디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함께 부둥켜 안고 울고 웃는 일입니다.
용기를 주는 일이고 힘을 보태는 일입니다.
제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희망사항의 하나입니다.
캄캄한 세상을 용감하게 헤쳐 나가시는 장로님에게 다시금 경의를 표합니다.
다시금 장로 장립을 축하드리며,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건투하시기 기도드립니다.
2019. 10. 1.
박성완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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