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757(2019. 11. 16. 토요일).

시편 48:9-11.

찬송 51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토피가 흙을 피해서 생긴 병이라는 건, 그 전문가 자신이 흙집에 살면서 아토피를 고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한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주위에 몇 달 전 흙집을 짓고 이사한 분이 있습니다. 꼼꼼히 준비해서 짓고 세 형제자매 가족이 다 함께 옮겼습니다. 그런 뒤부터 서울 토박이였던 그 분 역시, 병이 낫고 건강해 졌다고 좋아했습니다. 강력한 흙집 예찬자가 됐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서울의 직장이며 여러 가지 풀어야 할 문제도 많았지요. 그러니 흙집인지 아파트인지의 문제는 단순히 집의 재료문제 만은 아닙니다.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 것인가 하는, 그야말로 철학적인 문제까지도 포함합니다. 더 추워져서 땅이 다 얼기 전에, 흙을 밟으러 어딘가 다녀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흙길을 걷거나 흙집에서 잠을 자면서, 1020년 후에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가? 그 때에 나는 어떻게 살고 있기를 바라는가? 그 청소년 인문학 교실의 학생들이 받았던 숙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고 싶어집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3118일 방송>b.

 

2.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21-23)”예수를 따르는 길(24-28)”을 읽었습니다. 첫 단락 수난을 예고한 것은 문선명처럼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실패해서 수난과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음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고 나선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말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말과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말은 자기의 존재자체를 버린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버린다는 뜻도 아닙니다. 자기를 버린다는 말은 자신의 욕망과 자신의 목표와 자신의 계획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주님의 욕망과 목표와 계획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는 제가 강의하는 동안에는 전적으로 강의에 올인(all in)하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선생이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은 학생들에게 방향과 목표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학생은 그 방향과 목표를 바탕에 두고서, 다른 참고서도 읽고 <Time>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학생은 훗날 좋은 대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신약교수가 되어서 외국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의 멍에를 짊어지고 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힘겨운 자기 멍에 혹은 자기 십자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자기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대신 짊어져주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책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것은 작은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숙제를 대신해 주거나 스펙을 쌓는 일을 부모주도로 하게 되면 이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누구도 대신 짊어져 주지 못하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는 자포자기 할 수 밖일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갈 때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됩니다. 제가 목사가 되기 위해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처음에는 부모님이 원망스럽고 하나님까지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되고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들이 다름 아닌 제가 짊어져야 할 저의 십자가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걸 깨닫고 나니까 주님을 따라가는 일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행복은 모든 것이 형통해서가 아니라, 고난의 의미와 무게가 너무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데서 오는 행복이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여러분이 보여드릴 반응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것뿐일 것입니다.

 

3. 모처럼 아내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힘든 일을 잘 보조한 때문일 것입니다. 몸살끼를 얘기해서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약하거나 힘들 때 말을 하고 싶어집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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