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899(2020. 4. 6. 월요일).

시편 74:16-18.

찬송 473(언제나 통일 찬송가).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인물에 대해서 평가할 때, 시대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13세기 한국 문학사에서 최고의 문장가라고 해도 무방한, 이규보가 바로 그런 문제적 인물인데요. 고려 무인정권 때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원에게 시문을 지어 보낸 게 입신의 출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서 무인 정권에 아부해 출세한 인물이라는 주장과, 정권에 참여해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인물이라는 주장으로 갈리는데요. 둘 다 사실이지만, 전자의 잣대를 대냐 후자의 잣대를 대냐에 따라서, 이규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규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는 글이 있습니다. <봄 경치를 바라보며> 라는 수필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알고 있다. 여름에 바라보면 찌는 듯한 더위에 얽매이고, 가을에 바라보면 쓸쓸하기만 하고, 겨울에 바라보면 고달프고 답답하다. 이 세 계절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마치 변통(變通)할 줄 모르고 한 곳에 붙들린 듯하다. 오직 봄에 바라보면 경물과 처지에 따라 변한다. 바라보면 기쁘기도 하고, 바라보면 슬퍼 눈물짓기도 하며, 바라보면 노래 부르기도 하고, 바라보면 눈물 흘리기도 한다. 처지에 따라 사람을 감동시키는 게 제각기 천 가지로 만 가지로 다르다. 나 농서자와 같은 사람은 어떠한가? 술에 취해 바라보면 즐겁고, 술이 깨어 바라보면 서럽다. 곤궁한 처지에서 바라보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듯하다. 현달한 처지에서 바라보면, 해가 환하게 비치는 듯하다. 기뻐할만 하면 기뻐하고, 슬퍼할 만하면 슬퍼하니, 참으로 보는 경치와 마음에 따라 사물과 함께 움직이고, 한 가지 기준으로 헤아릴 순 없는 사람이구나.” 같은 봄이라도 제각각 놓인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똑 같이 즐거운 봄이거나, 한스러운 봄은 없다는 거지요. 그러니 상황과 처지에 따라서 융통성 있게 세상사를 바라보는 게 옳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기준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사람에 대해 판단하기가 이렇게나 어려울까 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744일 방송>

 

2. “인사(1-2)”환난 후에 받는 위로(3-7)”을 읽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편지는 독특한 서두어가 있습니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밝혀지고, 그리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화의 인사말이 등장합니다. 이런 형식은 1세기 그리스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인사말이었습니다. 저는 바울 사도가 자신이 살던 시대를 무시하지 않고 배울 것은 배우고 차용할 만한 것은 차용하는 분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며칠 전에 드린 말씀처럼 고린도 후서는 사도의 자서전적인 서신으로 자신의 속내를 들추어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의 본문은 사도가 화해를 위해서 쓴 편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가 첫 사랑을 느꼈던 교회로 온갖 열정을 갖고 돌보았지만, 다른 선교지로 떠나게 되자 비난들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디도가 급파되어 수습을 했는데, 다행히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과 교회가 정상적인 관계를 갖게 되었고, 이를 기뻐하며 쓴 편지입니다.

   사도는 본문에서 환난과 위로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권합니다. 환난  에서 자유로운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이 아무리 극심하다 하더라도 그 모두를 다 압도하는 위로와 평화가 있다면, 그런 환난은 오히려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될 것입니다.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눈과 마음을 주셨으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그게 어렵다는 걸 깨달을 때, 말 못하는 짐승에게서도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한 달은 온통 마음이 쓰레기장에 있었습니다. 분리수거를 싫어하는 많은 분들이 박스 안에다 잡동사니를 구겨 넣고 내 던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 쓰레기는 시에서 가져가지만, 박스 등 종이는 어떤 개인이 가져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박스 안에 담긴 쓰레기들까지 박스 수거하는 분이 가져갈리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쓰레기 장 안에 그런 박스들이 쌓여만 갑니다. 그러니 쓰레기 당번은 그것들을 네 종류로 분리해서 미화원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잡동사니를 누가 버렸는지 쉽게 알 수 있고, 카톡으로 마을 공동체에 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쓰레기 장 옆 우리에 있는 검둥이가 그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고, 그때부터 쓰레기장에 갈 때마다 검둥이 간식을 준비해 갔습니다. 저를 위로하는 친구를 알아본 것입니다. 당번을 마치는 날 총무님은 마을 카톡에 촌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고 올리셨습니다.

 

3. 진천 중앙교회 김동환 목사님의 동영상을 올립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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