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02호(2020. 4. 9. 성목요일).
시편 75:1-3.
찬송 28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4월하면 생각나는 유명한 시구로는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인 T. S. 엘리옷의 <황무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흔든다” 이렇게 시작되는 <황무지>는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시구절입니다. 하지만 그 구절은 한편으로는 의아함을 주기도 합니다. 4월이야말로 봄이 시작되고 온갖 꽃이 피는 너무 아름답고 화사한 계절이지요. 메마른 황무지와는 가장 거리가 먼 달입니다. 그런데도 4월을 가장 잔인한 황무지의 달이라고 표현한 것은, 일종의 시적 비유였습니다. 엘리옷에게는 서구인들이 정신적으로 점점 더 황폐해지고 메말라 가는 듯 보였습니다. 봄은 왔지만 서구인들의 정신적인 황량함과 정서적인 불모상태는 계절과는 반대로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다 엘리옷 자신 또한 정신적으로 큰 고통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봄비가 잠든 뿌리들을 흔들어 깨워도, 엘리옷에게 4월은 잔인하고 황량한 달이었던 겁니다. 중국 당나라 시인인 동방교도 비슷한 시어를 썼습니다.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4월에는 오늘을 통해서, 봄비가 잠든 뿌리를 흔들어 깨우듯, 우리의 삶에도 정말 따뜻하고 행복한 봄이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4월 11일 방송>b.
2. 성목요일의 복음서의 말씀 마 26:26-29을 읽었습니다. 서양 교회는 성주간을 특별하게 지키는 경향이 있는데, 오늘 성목요일은 성찬 제정의 말씀을 듣고 성찬식과 세족식을 가집니다. 성목요일에만 할 수 있는 교회의 행사라고 할 수도 있고, 지난 2천 년간 지켜온 전통의 계승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성만찬 제정의 말씀입니다. 성찬 제정의 말씀은 공관복음서에서는 모두 취급하는데(막 14:22-25, 눅 22:15-20) 반해서, 세족식에 관한 말씀은 요한복음서만 취급하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13:1-20).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은 무교절 첫날 저녁으로부터 7일간 진행되는데, 그 첫날 만찬은 양을 잡고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유명한 전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 역시 이런 유월절 전통을 지키게 되었는데 이는 예수님이 인류를 위해서 대속의 제물이 되실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유월절이란 건너뛰는 절기로 애급에 내린 10번째 재앙인 모든 집의 장자와 초태생(初胎生)을 죽이려고 내려온 천사가 문설주에 뿌려진 양의 피를 보고, 그 집은 건너 뛰어감으로 구원했다는 출애굽 역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유대인의 해방절기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 유월절의 만찬에서 사용된 누룩 없는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해석하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곧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다. 받아 마시라. 이것은 나의 피다.” 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제정된 성찬의식은 초대 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기독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례가 된 것입니다. 세례식과 더불어 기독교회의 성례가 된 성만찬의식은 안수 받은 성직자에 의해서만 집례 하는 전통이 생겨났는데, 중세 이전에는 서품 받은 사제가 없는 시골 성당에서는 세례와 성찬을 행하지 못하는 비극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 성찬의 의미에 대해서 잠깐 묵상하려고 합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이 성찬을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들어 거양(擧揚)한 후 성별(聖別)할 때 주님의 살이 되고 주님의 피가 된다는 화체설을 가르칩니다. 그런가하면 루터교회는 성별할 때 주님의 몸과 피가 그 빵과 포도주에 실재(實在)한다고 가르칩니다. 마지막으로 쯔윙글리의 개혁파는 이런 일체의 성찬 의식은 상징(象徵)에 불과하다고 가르칩니다. 이에 대해서 각각의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참여하는 성찬에 대해서 분명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런 이해가 부재하다면 성찬의식은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성찬의 빵과 포도주에 주님께서 임재하심을 믿습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성찬은 언제나 충만한 은총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3. 성목요일에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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