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81호(2020. 6. 27. 토요일).
시편 89:15-18.
찬송 31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젊은이가 독립된 장인으로 인정받는데 필요한 수업여행을 떠납니다. 시냇물을 따라가다 보면 물방앗간이 나오겠지. 냇물을 이정표 삼아 동반자로 여기며 방랑하던 젊은이는, 마침내 물방앗간에 이르러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지요. 그러나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사냥꾼에게 끌리고, 젊은이는 시련의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정표요 동반자였던 냇물의 위로에, 젊은이는 시냇물에 몸을 던져 영원한 안식을 찾고자 합니다. 내가 찾은 노래, 슈베르트의 연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의 마지막 스무 번째 곡은, 청년의 슬픔을, 죽음을 애도하는 시냇물의 만가입니다. “시냇물의 자장가” 들어보시지요. “편히 쉬어라, 편히 쉬어. 눈을 감아라. 피곤한 그대 방랑자여, 집에 왔도다. 신의가 여기 있으니, 내 곁에 누워야 하리. 바다가 시냇물을 모두 마셔버릴 때까지. 그대를 시원하게 재워주리라. 수정처럼 맑은 이 파란색 작은 방, 푹신한 잠자리 위에서. 이리로 와라. 이리로 와. 흔들 줄 아는 모든 것들아, 출렁이며 나의 젊은이를 흔들어 재워다오. 초록빛 숲으로부터 사냥 나팔 울리면, 졸졸졸 소리 내며 내 주위를 감싸리. 들여다보지 말아라. 파란색 작은 꽃들이여, 너희들은 내 품에 잠든 이의 꿈을 악몽으로 만든다. 사라져라, 사라져. 물방앗간 오솔길에서. 심술궂은 아가씨여, 그대 그림자가 그를 깨우지 않도록. 내게 던져라, 그대 근사한 작은 목도리를. 내가 그의 눈을 가려보이도록. 잘 자라, 잘 자. 모든 것이 깨어날 때까지. 그대 기쁨을 잊고 잠들라. 그대 슬픔을 잊고 잠들라. 보름달이 뜨고 안개가 옅어지니, 저 위의 하늘은 어찌도 그리 광활한지.”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14년 6월 30일 방송>
2. “율법의 목적(3:23-4:7)”을 읽었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정치인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제가 다니던 대학 채플에 강사로 오셔서 “어머니의 잔소리가 그립습니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시면서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그렇게도 듣기 싫던 어머니의 잔소리가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까, 그것도 어머니가 별세를 하신 이후로는 한 말씀 한 말씀이 금과옥조 같은 말씀이더라는 것입니다. 가령 “밥은 오래 꼭꼭 씹어 먹어라.”,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들거라.”, “선생님 말씀은 귀를 앞으로 당겨 듣거라.”,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 거라.” 이런 말씀을 한 두 번 하시면 그만이지, 쉬지 않고 말씀하셔서 얼마나 열불이 났는지 모른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돌아보면, 그런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니까 계속 말씀하셨고, 그게 잔소리처럼 들린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더 귀한 말씀을 들려주시고 싶었지만, 그런 기초 생활률도 지키지 못하는 철부지 자식에게 어떻게 더 좋은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울컥하셨습니다. 마땅히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나 이런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부잣집 아들이어서 고생을 모르고 자랐기에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가난한 농사꾼의 자식들은 너무도 일찍 터득했던 말씀인데 말입니다. 어린 시절을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은 철이 빨리 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도는 율법의 진정한 목적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데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바르게 산다는 것,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누누이 말씀드린 것처럼,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사람도 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입니다. 겉으론 교양인과 인격자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은 그 마음속에서는 온갖 악한 생각과 음모가 들끓고 있는 것이 인간인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살인자요 간음자요 헛맹세하는 자요 원수 갚을 기회를 노리는 자라고 규정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결국 누구도 율법을 실행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의 허물과 죄악을 담당하실 근거를 밝히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짊어지신 주님의 행동을 동의하고 신뢰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인간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안한 것이며 우리에게 그래도 된다 하신 말씀입니다.
3. 어제는 도봉산 둘레길을 산책하였는데, 등산객이 많이 줄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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