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6980호(2020. 6. 26. 금요일).
시편 89:11-14.
찬송 34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모르리. 사랑이 나를 어떻게 지배하는지. 어떻게 나에게 들어와 나를 정복하고, 어떻게 내 마음을 태우고, 또 어떻게 내가 수줍은 내가 당신을 차지하는지 아무도 모르리. 사랑은 알고 있네. 우리 마음이 노예가 되기를 원할 때, 잠시 맞서보는 이성의 힘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1500년대에 프랑스에서 살았던 시인 롱싸르는, 사랑이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물방앗간의 아가씨가 사냥꾼을 연모하는 것을 바라보며 슬픔에 젖어 있는 젊은이도 이 시에 공감하지 않을까요? 내가 찾은 노래,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열아홉 번째곡, “물방앗간 청년과 시냇물” 들어봅니다. “진실한 마음이 사랑으로 사라지는 곳에서, 꽃밭마다 백합들이 시들어 가네, 거기선 보름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야 하네. 그의 눈물을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거기선 천사들이 눈을 감고 흐느끼며 노래하네. 영혼이 안식하도록. 사랑이 고통에서 간신히 벗어날 때면 새로운 작은 별 하나가 하늘에서 빛나네. 그 때 반은 붉고 반은 하얀, 장미 세 송이, 가시 많은 가지에서 다시는 시들지 않네. 천사들은 날개를 잘라버리고 매일 아침 지상으로 내려오네. 아, 시냇물이여, 사랑스런 시냇물이여, 그렇게 훌륭한 생각을 하다니. 아, 시냇물이여, 하지만 너는 아느냐? 사랑이 어떻게 할지를. 아, 밑에 저 밑에는 시원한 안식이 있네. 아, 시냇물이여, 사랑스러운 시냇물이여, 그렇게 계속 노래하여라.”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14년 6월 29일 방송>
2. “율법과 약속(15-22절)”을 읽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중학생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마을에 통일교회가 들어왔습니다. 소문이 흉흉했는데, 젊은이들이 많이 모인다는데, 외지에서도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강연 같은 것을 하다가 갑자기 불이 꺼지고 나면 그 안의 사람들이 서로 누군가를 찾아서 난리가 난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들은 전혀 낯선 상대를 만나서 결혼을 한다는 그런 프로그램도 있다고 합니다. 소문이니까 그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제게도 접근을 해서 신약 구약을 얘기하더니 교회에서 들어보지도 못한 얘기를 하는 겁니다. 성약(成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면서 하나님의 약속도 옛 약속과 함께 새 약속이 있고, 이제는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성약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개한 성구가 고전 12:11-12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과는 상반되는 내용인 셈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창 12:7, 13:15), 하나님의 백성의 약속(17:7), 풍성한 자손, 곧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자손에 대한 약속(22:17) 등입니다. 이런 약속과 함께 430년이 지난 후인 모세 시대에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훗날 율법이 주어졌다 해서 약속이 폐기되거나, 통일교도들처럼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진리는 시간이나 환경에 따라서 변하거나 바뀌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과 율법에 대해서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은 무엇이고 또 율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다 분명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약속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언이고 동시에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인간의 생각이나 의지 혹은 동의와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축복입니다. 땅을 주신다는 것이나 자손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까 그 약속을 이행하실 것입니다. 이런 약속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첫째는 믿는 일이고 둘째는 감사하는 일이며 셋째는 누리는 일입니다. 다음으로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이 힘써 행할 과제들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이지만, 지켜야 할 장본인은 우리 인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은 지키면 지킬수록 유익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무리 철저히 지키려고 해도 끝내 지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을 지키려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거나 근심치 않도록 힘쓰는 것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통틀어서 아직까지 한 사람도 효자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넘치는 사랑을 흉내조차 내기 힘든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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