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20호(2020. 8. 5. 수요일).
시편 97:1-4.
찬송 27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본 도쿄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을 쓴 곳, 에치코 유자와 마을까지는 신칸센으로 약 1시간 20 여 분이 걸립니다. 에치고 유자와 역에서 내리면, 야스나리의 숙소였던 다카한 류칸까지는 약 10분 정도의 거리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지요. 산책로의 주테마는 당연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입니다. 사실 에치고 유자와 마을은 소설 [설국]이 아니었다면, 눈이 엄청 많이 내리는, 그래서 주위에 스키장이 많은 시골 마을로 더 유명했을 겁니다. 일본엔 다른 지역에선 벚꽃이 분분한 4월에도, 그 마을에선 폭설이 쏟아서 산더미처럼 쌓이곤 합니다. 그 풍성한 눈은 녹으면서는 마을에 좋은 물을 공급하지요. 그런 좋은 물은 좋은 쌀을 나게 하고, 그 좋은 쌀은 다시 좋은 술을 나게 합니다. 그래서 에치고 유자와 마을에서 나는 청주와 쌀은 일본 내에서도 질 좋기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이후로, 그 모든 것들 보다 가장 크고 널리 에치고 유자와를 알리는 것은 소설 [설국]입니다. 마을 이름부터가 아예 <설국마을>로 불릴 정도입니다. 그곳으로 문학 기행을 떠나는 이들은 아예 소설 설국의 첫 문장, 첫 장면을 보여주는 시미즈 터널을 제일 먼저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예 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라는 주인공의 첫 도착부터를 그대로 똑같이 느껴보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에치고 유자와 마을과 접해 있는 이웃 기차역 군마 현의 미나카미 역으로 나가야 합니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시미즈 터널을 지나야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에치코 유자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12월 12일 방송>a.
2.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25-36)”을 읽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설교자들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려 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성경을 빙자해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경험이 비슷한 사람들답게 식상할 만큼 뻔한 사람들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슬픈 현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 문학에서는 이른바 6하 원칙을 기본으로 가르칩니다. 누가(who) 무엇을(what) 언제(when) 어디서(where) 왜(why) 어떻게(how)로 진술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이 정도는 확인하고 읽은 후에,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그 참된 의미를 유추해 보라고 말입니다. 표제어가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이라고 붙여 놓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성경학자들의 안목으로 본문을 요약한 때문입니다.
이사야의 고백이나(사 55:8-11) 어거스틴의 깨달음에 의하면, 어느 인간도 하나님의 뜻이나 경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 역시도 진리를 통달할 것처럼 오만을 떨어선 안 될 것입니다.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백성이면서 그 귀한 자리를 이방인에게 내어준 것에 대해서 명쾌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완고하고, 하나님과 원수지간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누구나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기는 순간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다 더 높은 자리로 올라서려 하는 때문입니다. 최고나 제일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총에서 예외자가 되었고, 대신해서 말씀에 순종하기로 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렇듯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날이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완고한 마음을 버릴 것이고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경륜이란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이방인들이 다 구원의 자리에 참예하게 될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미움과 조롱을 받던 사마리아인이 오히려 유대인을 죽음에서 구해준 예화나, 하나님의 구원 섭리는 이방인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엄청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평생 부모 곁을 떠나지 않은 첫째 아들은 물론, 탕자처럼 인생을 낭비한 둘째 아들까지 다 끌어안고 품어 주시는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누가 이런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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