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16호(2020. 8. 1. 토요일).
시편 96:1-3.
찬송 41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재산이 많은 사람이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생활에 진실로 만족할 수 있다고 증명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만 달러를 주겠다는 거였는데요. 정해진 날에 각 분야에 직업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제 각각 상금을 타기 위해, 어떤 이는 자기 직업에서 만족함을 발견했다고 했고, 어떤 이는 충분한 보수에서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좋은 가정이 있어서, 또는 훌륭한 학위가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요트를 갖고 있어서, 그리고 어떤 이는 “저는 불평을 하려고해도 할 게 없어서 걱정일 정도입니다. 세계 일류대학을 나왔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제일의 기업에 다니거든요.” 이렇게 제 각각 자기 생활에 만족한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상금은 아무에게도 돌아갈 수 없었는데요. 광고를 냈던 사람이 원하는 답을 갖고 온 이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아주 간단한 질문을 했는데, 그들 중에 진짜 답을 얘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질문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진실로 생활에 만족한다면, 내 돈 만 달러를 무엇 때문에 원하는가?” 사람들에겐 모두 각자의 진실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쩌면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고자하는 거였는지도 모르지요. 노자는 도덕경에서 말합니다.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채워가는 것, 도의 길은 하루하루 비워가는 것. 비우고 또 비워서 다함이 없는 지경, 즉 무의(無依)의 경지에 이르라. 다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 천하를 만나려면 억지 일을 꾸미지 않을 때만 가능하며, 아직도 억지 일을 꾸미면 족히 천하를 만날 수 없다.” 진실로 생활에 만족하며 하루하루 비우는 무의를 깨닫는 게 쉽지 않지요. 모든 일이 억지로 꾸미지 않을 때, 오히려 물 흐르듯 되어진다는 사실, 어디까지 가면 깨달아질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6년 9월 15일 방송>
2. “구원은 만민에게(14-21절)”을 읽었습니다. 어제와 같은 표제어를 가진 말씀입니다. 너무도 많은 이들, 그 중에서도 이성적으로 밝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들이 이 믿음에 의한 구원을 회의하고 불신해 왔습니다. 버틀란트 러셀 같은 이는 70여권의 저술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인데, 그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책을 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러셀은 철저하게 논리적으로 하나님과 신앙에 물음을 던집니다. 제1원인론에 대해서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는가를 물음으로, 목적론에 대해서는 찰스 다윈의 이론으로 무의미해졌다 말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이사야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다.”는 말을(사 55:8-11) 했고. 4세기의 교부 어거스틴은 인간 세계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이성으로,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는 믿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했습니다. 신앙의 세계를 어리석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루살이의 논리로 어떻게 인간의 생각과 삶을 눈친들 챌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신비라고 불렀습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믿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식을 믿고, 배우자를 믿고, 그리고 교사와 정치가까지도 믿는 것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런 믿음은 손해 볼 때도 있지만, 그 때문에 엄청난 기적을 맛보는 것 아닙니까? 저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천국의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사람들이 제멋대로 지어내는 말을 믿는 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고개라도 끄덕거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나 전도자를 통해서 전해진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의 신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믿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그리고 아무나 누리는 특혜가 아닌 때문입니다. 제 아이들이 저를 믿어주는 것을 저는 한없이 행복해 합니다. 그래서 조금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 믿음에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도 겨우 남은 자들이 이 믿음에 참여하고, 이 남은 자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하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사 10:22-23, 1:9).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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