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13(2020. 7. 29. 수요일).

시편 95:1-3.

찬송 513, 51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승승장구 사업체를 운영하며 이름을 떨치던 시절, 특별이 내 세울게 없는 젊은 노동자 한 명이 그를 찾아갑니다. “나는 당신과 동업을 하고 싶어서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어쩜 엉뚱하게 보일 수도 있었던 그는 아주 진지했고, 열망 또한 뜨거웠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유명한 발명가, 게다가 연구소까지 갈 경비조차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젊은 청년은 말단직원으로 고용돼서 허드레 일을 하지만, 최선을 다했지요. 그러던 1887년의 어느 날 당시 토킹 머신으로 불렸던 축음기를 발명한 에디슨은 실험적으로 동료인 메리 해스 리틀 램, <메리는 작은 양이 있었네>를 녹음하지요. 하지만 아이들의 장난감 정도로 생각한 영업 사원들은 이 발명품이 팔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에디슨 역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물건이 많은 이의 생활을 바꿀 거라고 생각한 건 바로 이 젊은이였지요. 그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에디슨은 축음기 판매를 맡겼고, 개월 만에 수천대의 축음기가 팔려 나갔습니다. 이윽고 그는 미국 최대의 가전업체의 총판권을 따냅니다. 그렇게 에디슨의 동업자가 되고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 그 에드베인스 번스입니다. 무명인에 무일푼, 그가 가진 것은 남과 다른 생각. 현재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는 미래에 시선을 두는 거였습니다. 훗날 에디슨은 나를 처음 찾아왔던 그는 떠돌이 모습이었지만 얼굴에는 굳건한 의지가 보였다. 나는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진실로 원하는 목표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이룬다는 걸 알고 있었다.” 라고 말했지요. “인간은 진지하게 생각함으로써 풍요로워 질 수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번즈의 말인데요. 어쩌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말이 그는 온몸으로 실천했고 또 증명해 냈기 때문에 설득력 있는 게 아닐까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692일 방송>

 

2.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1-18)”을 읽었습니다. 저에게 배운 한 학생이 저를 찾아와서 이스라엘 선교사로 떠나겠다는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그 학생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은 바울 사도의 말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 하나님과 맺은 계약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율법도 있고 예배도 있고 약속을 가진 보통사람일 수가 없는 민족입니다. 무엇보다도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의 후손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도 육신의 몸을 그들에게서 입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거나 모른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까?” 하고 말입니다. 문선명이 사도의 질문을 악용해서, 구약(舊約)도 실패하고 신약(新約)도 실패했다 말하며, 그래서 성약(成約)이 필요하다 주장할 빌미를 준 것입니다. 그리고는 성경에서 딱 한 곳을 뽑아 인용합니다. 고전 13:8-12이 그것입니다. 이단들이 저지르는 실수입니다. 성경의 보편적인 중심 사상이 아니라, 어떤 특정 자구를 아전인수식으로 뽑아 쓰는 수법 말입니다.

   문선명 식으로 다시 질문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한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은 변경된 것입니까?” 그렇게 억지를 부릴 수 있지만, 사실은 훨씬 더 깊고 오묘한 진리가 여기에도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말로 사도는 대답합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육정이 자녀인 이스마엘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라고 말입니다. 인간의 혈통적 자손이 아니라, 약속을 믿으며 기다린 믿음의 자손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서도 실상은 믿음과는 반대되는 공로와 업적을 내세우며 살고 있습니다. 제가아는 한 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목하는 설교가 아니라, 인간의 노력과 수고로 이룩한 업적을 찬양하는 출세 담을 하곤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강단의 형편이기도 합니다. 예배 시간 내내 십자가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물질과 출세를 밝히는 야욕으로 가득한 설교자의 얼굴만 바라보게 하는 스크린이 예배당 중심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에서가 아니라 야곱인지, 어찌하여 바로가 아니라 모세인지를 생각하게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합니다. 우리가 주목하고 힘써야 할 과제는 하나님의 약속을 묵상하고 기다리는 순전한 믿음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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