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37(2020. 8. 22. 토요일).

시편 102:8-11.

찬송 8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스런 내 딸에게> 정아야, 첫 딸은 낳은 엄마들이 제일 많이 듣는 덕담(德談)이 뭔 줄 아니? 자식이 아니라 친구를 얻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말이야. 엄마에게 딸은 자식이 아니라, 사이좋은 길동무가 돼 준다는 그 덕담. 물론 엄마도 많이 들었고, 또 지금까지도 듣고 있단다. 그런데 그런 덕담이 그냥 듣기에만 좋은 말이 아니라는 걸, 네가 커 가면서 더 새록새록 느끼게 돼 엄마, “엄마 메일 한번 열어보세요.” 이렇게 빨간 하트 하나 매달아서 보낸 네 문자에 엄마는 마음이 녹았었지. 게다가 어쩌다 보내주는 문자도 황송할 판에, 그렇게나 긴 편지를 보내주다니, 그래 기분이야, 앞으로 세 번은 더 봐줄게. 그만큼 오늘의 네 편지는 달콤했거든. 뭐랄까 내가 이런 편지를 보내줄 딸을 둔 엄마라는 게 마구 자랑스러웠을 만큼 말이지. 정아야, 사실 그날 엄마는 조금 충격을 받기는 했어. 그런데 다 너 때문이었던 것은 아냐. 외할머니, 그날 외할머니랑 전화를 했었거든. 외할머니는 시시콜콜 묻고 싶은 것이 많으시잖니. 그날도 그러셨어. 점심은 먹었느냐? 뭐에다 먹었느냐? 혼자라고 대충 때우고 넘어가지 말아라. 집에만 있지 말고 친구들도 만나 거라. 이제 네 건강에도 신경을 써야할 나이다. 그런데 정아야, 전화를 걸때마다 흘러넘치는 외할머니의 사랑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잔소리로만 들리니. 너무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말이지. 이렇게 나이 많은 엄마가 갑자기 애가 된 기분이었어. 하마터면 나도 너처럼 이젠 저도 어른이잖아요? 이런 독립선언을 할 뻔 했다니까. 그날 정아 네가 참견 좀 그만하라고 했을 때, 문득 오후의 그 전화 통화가 생각나더라. 그리고 깜짝 놀랐지. 축축한 사랑은 싫은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은은하고 뽀송뽀송한 사랑이 좋다곤 외치곤 했었는데, 이미 내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건가 싶었지.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해서 크게 실망했다고 할까? 그런데 그런 엄마의 쓸쓸함까지 헤아리는 내 딸. 정말 고맙다. 엄마도 더 노력할게.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52일 방송> b.

 

2.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22-36)”을 읽었습니다. 어제 둘째 단락이 베드로의 설교였는데, 전반부는 성령의 임재에 대한 구약 성경의 약속을 상기시킴으로, 성령 임재현상을 말씀하고 있었습니다. 곧 요엘서 3:1-5을 인용하고 있는데, 성령임재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니까 예언을 하게 되고, 계시를 보게 되며, 꿈을 꾸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들은 마지막 날, 곧 주의 날이 이르는 때라고 말입니다. 마지막 날, 혹은 주의 날이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목표나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되는 날이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베드로의 설교가 그 대상을 유대인으로 삼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1세기 유대 사회나 초대 교회에게 있어서, 나사렛 예수는 뜨거운 감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예수 사건(십자가와 부활)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활발한 주제는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뜨거운 감자처럼 조심스럽게,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무시하듯 당당하게 그의 설교의 주제로 꺼내 든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은 단순히 나사렛 출신 아무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분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에 의한 놀라운 말씀과 표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이는 하나님의 뜻이었고 계획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십자가는 무력한 패배자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고 그 위상을 높이 올린 것입니다. 어쭙잖은 변명이나 말재간으로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해 마지않는 다윗의 입을 통해서 이를 변증한 것입니다(16:8-11). 심지어 예수의 왕되심을 예언한 사람이 다윗이며(132:11), 예수의 부활을 예언할 뿐 아니라(16:10), 하늘에 올리심까지를 예언 했다고 말입니다(110:1). 더 이상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해서 함부로 비하하거나 조롱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유대인이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구세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말입니다. 베드로의 이 오순절 설교는 오늘 모든 설교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며 구주이심을 선포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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