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039호(2020. 8. 24. 월요일).
시편 102:15-18.
찬송 23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은지에게> 지난 번 모임 때 네가 준 책 잘 읽었어. 출판사가 불황이라 일손도 없이 거의 혼자서 만들었다고 하던데. 내용도 좋고 디자인도 참 깔끔하더라.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도 책 속지에 그 책을 만든 네 이름 석 자가 당당하게 박혀 있는 것이 제일보기 좋았어. 뭐 솔직히 좀 많이 부러웠지. 아직도 엄마 손 많이 타는 아이를 곁에 두고 책 한권을 제대로 읽는 일이 힘들어서 이제야 고맙다는 말을 하는 내 처지에서는 말이야. 네가 정말 부러워. 우리 나이 이제 서른한 살, 그래서 넌 더 각별한 기분으로 서른한 살 주인공들이 나오는 그 책을 만들었겠지. 그런데 그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오더라. 교정하면서 읽었겠지. 난 이제 막 이제 서른을 넘긴 여자가 좋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새로 시작할 수도 있는. 이런 대목 말이야. 게다가 서른한 살을 이미 사랑에 목숨을 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사랑을 포기하지도 않는 나이라고 했더라. 그 대목 읽으면서 정말 그런가? 한참을 생각해 봤어. 정말로 나는 더 이상 방황도 하지 않고 나름대로 확고한 가치관도 가지고 있나? 그런데 은지야, 난 아닌 것 같애. 너처럼 확실한 직장도 가지고 있고 일 때문에 결혼도 미루고 있는 입장이라면 또 몰라. 그런데 난 아냐? 오히려 방황이 시작되는 나이인 것 같애. 사는 게 이런 건가?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 가끔 진지하게 고민해보곤 해. 그런데 답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좀 쓸쓸해 질 뻔 했어. 아무튼 네가 만든 책 고맙게 잘 받았고 잘 읽었어. 덕분에 내 서른한 살에 대해서 더 고민해 볼 수 있었거든. 자, 그럼 다음 모임 때 또 보자.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5월 6일 방송> a.
2.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1-18절)”을 읽었습니다. 오늘부터 요한 복음서를 묵상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서간문을 너무 오래 묵상하느라 피곤했는지 모릅니다. 공관복음서(마, 막, 눅)가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대한 사실(fact)을 말하고 있는 것에 반해서, 요한복음서는 우리 주님의 말씀과 행적의 의미를 밝히려거나 해석하는데 치중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지상파 방송이 공관복음서처럼 fact를 전하는데 주력한다면, 유투브는 요한복음서처럼 그 fact의 의미를 자신의 입장에 따라서 해석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요한 복음서를 여는 대목으로 신학적으로 사용하는 유명한 용어 화육(incarnation)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분인데, 그 말씀으로 존재하시던 분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기독교 신앙생활은 이전보다 훨씬 더 잘 무장된 삶이라 기대하기 때문에, 저는 종종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내용이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현존이란 말씀 자체이다는 인식도 그렇고, 예수님이야 말로 말씀의 현현이라는 확고부동한 신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용기 그리고 희망과 기쁨을 준다고 말입니다.
신학생 시절에 어느 교회 전도사로 재직할 때,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 준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그림으로 그려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을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로 그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묘사하기를 천천히 그리고 진동이 일어나는 음성으로 묘사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런 것은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어떤 그림이나 어떤 음성으로 묘사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가장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실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묘사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하겠고,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너무도 간단하고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는 일이고, 그 성경에 따른 말씀을 듣는 일이며, 그 성경이 명령하는 대로 세례와 성찬에 참여하는 일인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제대로 아는 방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성경을 올바르게 읽는 일입니다. 물론 에티오피아에서 온 내시처럼 성경을 읽으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 곤란합니다. 좋은 선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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