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21호(2021. 2. 22. 월요일).
시편 시 135:19-21.
찬송 28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며칠 쯤 정말 쉬고 싶을 때,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크게 위험하지도 아프지도 않은 병에 걸려서, 며칠 병원에 입원이나 해서 좀 쉬었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깨끗하고 조용한 병실에서, 별로 심각하지 않게 쉬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당장 정말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그 말이나 생각이 얼마나 한가한 상상일 뿐이었는지 금세 알게 됩니다. 단실 병실은 자리도 쉽게 없지만, 있어도 결코 쉬는 느낌일 수 없지요. 다른 입원 환자들의 고통스런 신음도 그렇고, 병실 문은 치료나 간호 방문객을 위해 늘 열려 있기도 합니다. 몸과 마음이 오히려 더 어수선해지기 십상이지요. 그렇다고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병실은 너무 비싸고, 그러니 아무리 바쁘고 힘이 들어도, 병을 핑계로 쉴 생각일랑은 아예 말아야 할 일입니다. 병이 본인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을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게 하는 지를, 에드바르 뭉크처럼 잘 보여주는 화가도 드물 겁니다. 뭉크는 1863년 노르웨이의 로텐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하고 화목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뭉크가 워낙 병약해 집안의 걱정이 컸습니다. 더욱이 어머니가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난 데다, 아버지도 괴팍해져 집안 분위기가 크게 어두워졌지요. 결정적으로 특별히 잘 따랐던 누나마저 14살 때 결핵을 앓다 세상을 떠나자, 뭉크는 늘 공포에 사로잡힌 듯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떨치지 못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절규>며 <와인 병을 앞에 둔 자화상> 등에는, 그런 공포와 불안 신경 쇠약 등이 그대로 표현돼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애정을 대신하는 듯 했던 어린 누나 소피에의 병과 죽음은, 뭉크에게 특히 큰 상실감과 그리움을 남겼습니다. 그 상실감과 그리움으로 뭉크가 30대에 그린 그림이 <병든 아이>입니다. 누나 소피에가 아플 때의 모습을 떠올려 그린 그림이었지요. 소피에는 침대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고 있습니다.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소피에의 창백한 얼굴이며 손이 더욱 더 창백해 보입니다. 그래도 다른 어둑한 검은 배경들을 밝혀 주는 그 빛이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년 2월 21일 방송>a.
2. “가나의 혼인잔치(1-12절)”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일화라고 요한복음서 기자가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일화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이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라는 데 주목해 봐야 하겠습니다. 술 좋아하는 이들의 말을 빌자면, 예수님이 술을 만드신 것이 첫 번째 활동이셨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만, 무엇이든 제 용도로 바르게 사용하거나 알맞고 적당히 사용하기만 한다면, 좋지 않은 것이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술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마침 본문에서는 결혼 잔치에서 사용하는 포도주였습니다. 이런 술을 가리켜 반주(飯酒)라고 부릅니다. 식사에 곁들여 마시는 한두 잔의 술입니다. 소화를 위해서나 적당한 기분을 오르게 한다는 의미에서, 반주는 전 세계인이 권장해온 것입니다. 제가 처음 세계 여행 중이던 1979년 여름 독일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교인들이 카페로 들어가더니 검은 맥주를 큰 잔에 부어 마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고 하자, 너도 나도 나와서 맥주잔을 높이 들고 포즈를 취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만면에 함박웃음을 띄우고서 말입니다. 술에 인박혀 고주망태가 되어 인사불성인 우리네 형편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미네소타 주의 루터대학에서 유학할 때, 저의 후견인 교수가 만찬에 초대를 하셨는데, 식탁에 들어가기 전에 포도주를 내오셨고, 저를 포함한 초대자들이 모두 마셨던 신선한 추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포도주를 만드신 일을 어찌하여 첫 번째 기적으로 하신 것일까 의문은 여전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혼인잔치를 위해서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사 통과의례 중 가장 즐거운 자리를 기쁘고 흥이 나도록 도우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셨다고 요한복음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11절). 한국의 개신교회 교인들이 몇 번이고 곱씹어볼 귀한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봐야 하겠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기쁨과 즐거움의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가, 선생과 제자 사이가, 교인과 교인 사이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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