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22(2021. 2. 23. 화요일).

시편 시 135:19-21.

찬송 4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소피에의 병이 힘들고 위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는, 침대 가에 앉아 소피에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숙인 여인입니다. 그녀는 뭉크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뭉크의 집안을 돌봤던 이모라고 하지요. 이모는 소피에가 낫기를 간절히 기도 중이거나, 기도하다가 잠시 잠든 모습입니다. 완전히 숙여진 고개가 간절함과 절망감을 동시에 느끼게 합니다. 그런 이모 너머로 창밖을 보는 소피에의 표정은 오히려 담담해 보입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햇빛이 더욱 찬란해져서 온갖 꽃이 잔뜩 피어날 봄이 바로 창밖까지 다가오고 있는데, 이제 겨우 열 네 살인데 벌써 세상을 떠나야 하다니, 그림 속 소피에를 보고 있자면, 아무리 일상이 불행하고 힘들어도, 건강이 주어지는 한 누구든 엄살 없이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뿐이라고 해도 또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병으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기를 바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자신과 어머니와 누이의 병 때문에 평생을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던 뭉크를 생각하면, 아프지 않는 것도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을 위해 꼭 지켜야 할 원칙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다못해 사소한 감기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건강한 분들은 물론, 혹시 겨울에 아팠던 분들도, 이제 머지않은 봄기운을 미리 받아서, 밝고 환한 봄을 맞기를 기원해 봅니다<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2221일 방송>b.

 

2. “성전정화(13-22)”을 읽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신 예수께서 어느 날 성전에서 장사하는 소와 양들을 채찍으로 내쫓으며 환전상의 책상을 엎어버리고 성전을 청소하신 일화가 입니다. 마치 난동꾼의 행패처럼 여긴 유대인들이 앞으로 나서서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대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아주 오래된 관행으로, 제사에 쓰일 짐승들을 좀 더 상태가 좋은 것으로 드리도록, 성전 뜰에 외양간을 짓고 튼실하고 깨끗한 짐승들을 길러 팔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 성인 남성들이 해마다 드려야 하는 성전세인 반세겔을 환전해 주는 일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환전을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것이 하나도 없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주님은 어떤 뜻으로 이런 난동 같은 행동을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주님의 말씀에서 그 문제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과, 제자들이 성경에서 떠 올린 말씀 하나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는 말씀과 공관복음서의 평행귀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11:15-19)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장사꾼으로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씀, 어떻습니까? 낯선 말씀은 아닌 듯 하지 않습니까? 오늘의 교회는 더 이상 거룩한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교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목사들이 스스로 경건의 모습을 내동댕이 쳐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서울의 한 대형 교회는 주일 예배에서 목사들이 예복은 고사하고 넥타이나 양복을 벗어던지고 노타이에 운동화 차림으로 예배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경건의 내용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끝도 없이 되풀이 복음가를 열창합니다. 찬양을 받으실 분은 심중에 없고, 자기 감상에 젖어 복음가를 되풀이 부르는 것은 한국 개신교회의 상표가 된지 오랩니다. 그리고 성경과는 전혀 상관없는 상품선전이 광고되곤 합니다. 그 옛날 우리 주님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느끼셨던 바로 그 현상이 지금 우리 교회들에서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주객이 바뀐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줄기차게 외쳐지는데, 실제 인간의 영광을 위하여가 훨씬 더 적절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간절히 구한다고 말은 하는데, 그 확실한 방향은 교인들의 선행과 자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70년대 유명한 부흥강사를 모신 교회가 신축 교회당을 짓는 헌금을 모금하고 있었는데, 그 목표액이 부족하자 전 교인을 눈을 감기고 헌금액을 부르며 손을 들게 하는데, 그 모금액이 다 찰 때까지 경매처럼 계속 부르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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