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250(2021. 3. 23. 화요일).

시편 시 140:9-11.

찬송 48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신 현림 시 <그대는 혼자가 아니리라> 가운데서 인용합니다. “험한 물결 뛰어넘으리라/ 간절히 축복을 빌리라/ 그대는 혼자가 아니리라/ 영원히 홀로치 않으리라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날, 우리에게 힘을 주는 신 현림 시, <그대는 혼자가 아니리라>를 만나봅니다. 만일 그대가 슬퍼하면, 내가 그대 슬픔을 받겠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대가 고통스러우면, 그 태풍같이 휘몰아치는 고통의 식인종을 몰아내 주겠노라고. 만일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한다면, 그 문제 역시 나한테 기대면 된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외로운 사람들에게 시인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술에 찌든 그대 대신 내가 술 마시고/ 기쁜 내 마음 안주로 놓으리라/ 그대의 병든 살 병든 뼈/ 바람으로 소독하리라/ 추억의 금고에서 아픈 기억의 동전은 없애고 말리라/ 그대 가는 길에 길 닦는 로울러가 되어/ 저녁이 내리면 그대 가슴에 시를 읊고/ 그대 죽이는 공포나 절망을 향한 테러리스트가 되리라/ 신성한 연장이 되어 희망의 폭동을 일으키리라/ 험한 물결 뛰어넘으리라/ 간절히 축복을 빌리라/ 그대는 혼자가 아니리라/ 영원히 홀로치 않으리라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당신과 함께 걸어가 주겠노라고, 그렇게 약속을 내놓을 사람이 있으신가요? 혼자 가는 길은 외롭고 힘듭니다. 하지만 함께 나아가면, 즐겁고 기쁜 여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나와 동행해줄 그 사람을 마음에 품고, 든든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해 보는 아침입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219일 방송>

 

2. “바리새파 사람들의 생트집(18-34)”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35-41)”을 읽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이 눈을 뜬 것에 대해서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당사자에게 그리고 그의 부모에게 꼬치꼬치 따져 물었지만 별 소득을 얻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죄인의 청을 들어줄 리가 없는데, 자신을 눈뜨게 한 분이 어떻게 죄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듣고, 그 소경이었던 자를 회당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분풀이를 합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사람이 육체와 함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인식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영적인 존재라는 데에는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짐승들도 정신이 있다는 데는 동의할 것입니다. 제가 키우는 강아지는 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거짓 잠을 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으로 잠을 자는 것처럼 숨을 쉬고 하품을 하는 것을 눈치 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짐승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한다거나, 절대자인 신을 의지한다는 것은 상상해 본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런 점에서 분명히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 근거는 창세기 2:7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기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눈이 멀었다는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44년 전에 제가 성경을 가르쳤던 고등학생이 대구 대학에 입학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시각장애인으로 중도 실명을 해서 어린 시절에 보았던 경험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상상하며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세상과 사람을 아름답게 보인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비록 난데없이 욕설을 퍼붓고 사기를 쳐도 그 사람에게 그럴만한 딱한 처지가 있을 것이라고 너그럽게 배려하곤 하였습니다. 그것이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눈으로 본다는 것이 그들의 정신과 영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우리들 눈에 비춰진 세상은 두 가지로 정신에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객체가 무엇이든 간에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반대로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눈이란 많이 오염되고 타락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경향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어쩌면 눈이 밝지 않고 어두웠다고 한다면, 그들은 영적인 눈, 곧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지하는 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눈은 밝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 연결시켜주는 영적인 눈이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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