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01(2021. 5. 13. 목요일).

시편 시 3:1-2.

찬송 9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이왕이면 예쁜 여자가 좋다고 하지요. 물론 여자들도 멋진 남자를 좋아합니다. 제 주위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말하는 남자 선배도 있어요. 어찌 보면 아름다움 그 사람의 행운이기도 합니다. 보는 사람에게는 또 즐거움이고요. 우리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감동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나라마다 그 나라의 문화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만약에 미인이 한 나라에만 살고 있다면, 남성들의 삶은 얼마나 피곤할까요? 아마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서, 세계 각국의 남자들은 그 나라로 모여들겠지요. 어쩌면 전쟁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트로이 전쟁도 헬레네라는 아름다운 여인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미인의 기준은 그 나라마다 다르니까 얼마나 다행인지요. 아프리카의 은테벨레 족과 동남아 미얀마의 빠동족은 사슴처럼 목이 길어야 미인이고요. 중국의 오랜 전통은 전족한 여성, 즉 발을 칭칭 감아서 어린 아이처럼 발육이 안 된 작은 발을 가진 여인이 미인이라고 합니다. 또 옛날 여인들은 이마의 선이 반듯해야 미인소리를 들었다고 하는데요. 날마다 머리카락과 또 이마의 경계선에 난 잔털을 뽑는 것이 여자들의 큰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통수단이 발달해서 나라와 나라가 가까워지고, 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현대 국가를 움직이는 수단이 되고 부터는, 여성의 아름다움도 비슷해지는 것 같지요. 서구형 미인이 세계의 미인의 기준이 돼 버린 겁니다. 우리나라도 조선 백자 같은 단아한 몸매의 여자보다는, 화려한 헐리웃 스타일의 여자들이 더 이목을 집중 시키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화제가 됐던 미녀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서, 참 여자가 예뻐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저도 공감했었습니다. 그래서 성형수술이 그렇게 붐인가 보지요? 하지만 이제는 다양성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조각 같은 외모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부각시키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기도 해요. 부모님이나 형제 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예뻐요?” 라고 물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그 때 그래, 네가 제일 예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요. 그럼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입니다. 누가 뭐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미인입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428일 방송>

 

2. “구원의 창시자(5-18)”을 읽었습니다. 1세기의 기독교 세계는 영지주의자들과 함께 천사 숭배자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역사적인 배경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율법주의 또한 기독교 신앙을 방해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천사숭배 사상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비롯해서 하늘과 땅 사이에, 혹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간적 존재로 천사라는 초자연적 존재가 있다고 가정(假定)해 왔습니다. 그래서 때로는(28:12) 하나님의 심부름꾼(使者), 때로는(에녹서 6, 8, 9) 독자적인 영적인 존재로 활동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결과 천사를 숭배하는 현상들이 만연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럽 교회들은 이런 천사가 인간을 보호하고 지키는 수호신처럼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 혹은 중재자로 마리아나 성인들을 차용(借用)하는 경향으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곳이지, 천사가 지배하는 곳이 아님을 분명히 해 둘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 유명한 시편 8:4-6을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천사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분이라고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참여한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이심을 강조하는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스스로 고난을 당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완전하게 하실 뿐 아니라,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이 주님과 함께 여기 있다고 그들을 감싸 안아 주셨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천사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보자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중보자는 죄인들을 위해서 피 흘리고 완전케 하는 일 뿐 아니라, 자신을 그들과 형제라 동일시하며, 그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중보자가 되려고 할 수도 없으려니와, 그럴 자격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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