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399호(2021. 8. 19. 목요일).
시편 시 24:7-10.
찬송 7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스티븐 킹의 공포 소설 [샤이닝]에 등장하는 가족은 모두 세 사람입니다. 선생님이었지만 해고된 뒤 거의 알코올중독자가 되어가는 주인공 잭, 그런 남편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아내 엔디, 그리고 다섯 살의 어린 아들 데니, 세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잭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주어집니다. 산속에 있는 호텔의 관리자라는 자리였습니다. 잭은 술도 끊고 새 출발을 하리라는 생각으로, 가족을 데리고 깊은 산속에 있는 호텔 오버 룩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남다른 감지 능력을 가진 어린 아들 데니는 호텔을 본 순간 막연하게 불길한 기운을 감지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가족 밖에 없는 한 겨울의 고립된 호텔에서는, 갈수록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투숙객이 없는 방이나 복도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리고, 엘리베이터가 혼자 마구 오르내리는가 하면, 욕실에서 죽은 사람이 걸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다 심한 폭설로 호텔은 전화도 끊기고 완전히 고립되지요. 세 사람은 미칠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낍니다. 특히 잭은 누군가로부터 자꾸 아들 데니를 내 놓으라는 환청을 들으면서, 더더욱 심한 광기에 휩쓸려 갑니다. 그러다 마침내는 힘들게 끊었던 술까지 다시 마시지요. 그러면서 벌어지는 더욱 공포스러운 사건들. 내일 그 책이 있던 시간들에서 계속 이어드립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위에, 2015년 8월 8일 방송>b.
2. “영광스러운 변모(2-8절)”과 “엘리야와 요한(9-13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흔히 사람은 사후(死後)에 평가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극찬을 한다거나 혹평을 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유불리를 계산하는 인간 세계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야의 사적들은 당대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 하겠고, 세례자 요한 역시 죽음 이후에 평가한 것이라고 생각할 때 객관적이라 가름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의 침묵명령,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거기다 당대의 율법학자들은 메시야의 전령으로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 퍼즐만 풀면 모든 난제들이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주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 학자들의 주장이 말하는 먼저 올 자란 누구일까 하는 암시를 비친 것입니다. 혹시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 사람이 아니겠느냐고 말입니다. 충분히 질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을 비교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우선 엘리야는 북왕국 아합 왕과 아하시야 왕 시대에 활동하였으니(주전 876-854년), 세례자 요한과는 적어도 900년이란 시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많은 점에서 유사점이 있습니다. 아합과 헤롯이라는 악정을 일삼는 시대에 활동했다는 점인데, 특히 권력자들에게 서슬 퍼런 책망과 저주를 퍼부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 모두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살아서 승천하였으나, 세례자 요한은 목이 베어 순교를 당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전혀 달랐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의 현현으로 볼 수는 없다는 암시입니다. “엘리야는 벌써 왔으나,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고 말씀하심으로, 또 다른 엘리야를 필요치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메시아 이신 주님께서 엘리야처럼 고난과 멸시를 당하시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사람들이 제 멋대로 취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엘리야는 엘리야의 임무와 역할이 있었고, 세례자 요한 또한 자신의 고유한 임무와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2인 1조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또 배웠습니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고유한 임무와 역할을 위해서 세상에 부름을 받았고, 그것들을 수행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느 한 사람도 누군가를 대신하거나 그 역할을 승계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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