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489(2021. 11. 17. 수요일).

시편 시 39:12-13.

찬송 44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의 꿈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현대인의 주된 통신수단은 전화, 하지만 이렇게 분석했던 자료가 있습니다. “전화는 통신수단으로 생각하기에는 결점이 너무 많다. 이 기계는 탄생 순간부터 전혀 가치가 없는 물건이었다.” 미국 웨스트 유니언의 1866년 내부문서입니다. 현대인에게 TV는 내 친구, 그러나 이렇게 말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TV는 처음 6개월이 지나면 시장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매일 합판으로 만든 상자를 보는데 지겨움을 느낄 것이다.” 명 제작자 프로듀서 출신으로 20세기 폭스 회장에 올랐던 데를 자녹이 1946년에 했던 말입니다. 증폭기를 발명해서 라디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발명가 리드 포레스트 박사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텔레비전은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나 재정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이런 호언장담도 했다고 하지요. “인간은 달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요즘은 휴대전화의 메모리 용량도 많게는 60기가바이트가 넘습니다. 1기가바이트는 1킬로바이트의 백만 배. 그런데 빌 게이트가 1981년에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치명적인 실수로 기록되고 있지요. “640킬로바이트면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용량이다.” 데를 자녹, 리트 포레스트, 빌 게이트,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왜 예측에 실패했을까요? 아무래도 사람은 자신의 꿈의 크기로 타인을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현실적으로 이루기 불가능할 것 같으면, 남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겁니다. 그러나 그건 과소평가입니다. 정말로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장담 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러니 내 꿈의 크기로 다른 사람의 다른 시대의 꿈을 섣불리 판단해선 곤란합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말했지요. “당신의 꿈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을 멀리하라. 소인배들을 항상 그런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진실로 위대한 사람들은, 당신도 위대해질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14115일 방송>

 

2. “율법대로 살기로 맹약하다(1-27)”을 읽었습니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러 야단을 맞게 되었을 때는 두 번 다시는 잘못도 실수도 저지르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그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되돌아보면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자신을 보곤 합니다. 어린 시절 겨울철이면 얼음지치기나 깡통 돌리기 비석치기와 달집태우기 등 놀이가 쌓이고 쌓였습니다. 그 결과 광목을 검게 물들인 옷은 흙투성이가 되기 일쑤고, 물에 젖은 바짓가랑이는 흙으로 찌들어 어머니를 찬 물에 빨래하게 하는 불효를 저지른 것입니다. 어머니의 높아진 언성, 심하면 회초리로 그러지 않겠노라 다짐을 받던 일들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철부지 짓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6명의 동생들이 생기고 나서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지금은 찾을 길이 없지만 당시의 일기장 혹은 반성문에는 수도 없이 잘못을 뉘우치고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하루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뼈저린 후회와 반성은 바벨론 포로기에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처럼 율법대로 살기로 다짐 또 다짐하는 일들이 오랜 시간 계속되었고, 이 후로 나타난 현상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는 사회운동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킬 뿐 아니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고발 내지 체벌운동이 벌어져, 마침내 율법주의자들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율법주의에 동의하며 철저하게 율법대로 살겠노라고 다짐하며 서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그 첫 번째 이름은 총독 느헤미야였고, 그리고 시드기야를 비롯한 22명의 제사장 명단, 예수아 등 21명의 레위인들의 이름이, 그리고 백성의 두령들, 아마도 12지파의 장로에 해당하는 사람 70명이 서명을 한 것입니다. 이를 합치면 114명의 이름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명단에 포함된 것입니다. 이는 억지로 서명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도용당하는 요즘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서명한 것으로 추론됩니다. 그런데 이런 율법의 철저화 운동은 바벨론 유수와 가은 시련의 원인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하나님의 진노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철저화운동은 유대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 뿐 아니라, 신앙의 자유와 기쁨 보다는 감시를 받고 체벌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훗날 예수님이 만났던 바리새파 사람이나 율법사들 그리고 사두개인의 모습에서 그 짙은 그림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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