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85(2022. 2. 21. 월요일).

시편 시 59:14-17.

찬송 42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꽃처럼 피어나는 동생에게>    넌 아직 연인도 없고 그러다보니 결혼 계획은 더 더욱 없는 언니 앞에서 너의 기쁨을 애써 자제하려는 눈치더구나. 그렇지만 너의 얼굴빛은 네 피부는 네 미소는 점점 더 꽃다워지고 있어서, 감출래야 감출길이 없단다. 그러니 언니 앞이라고 자제하거나 그러지 않아도 돼. 피는 꽃을 보면서 참 어여쁘구나 해줄 만큼의 아량은 가지고 있으니까. 밤늦게 내 방에 잠간 들어왔다가, 무슨 노래가 이렇게 슬프냐고 네가 물어봤던 노래 있지. 그 땐 하던 일이 바빠서 설명을 못했는데, 미렌 마케바의 <말라이카>라는 노래였어. 아프리카 출신 가수가 부른 슬픈 사랑 노래야. “말라이카라는 말은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천사라는 뜻이래. 연인 사랑하는 사람을 가리켜. 그런데 그곳에서는 염소나 소 같은 결혼 지참금이 있어야 결혼을 할 수 있다지. 연인이 있어도 지참금이 없으면 절대 결혼할 수 없대. 그날 밤 내가 듣고 있었던 노래가 바로 그런 내용의 노래였어. “내 천사여 그대를 사랑해요. 내 천사여 그대는 내 인생의 반려. 그러나 어이하리.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소. 그대와 결혼하고 싶지만,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소.” 결혼을 앞두고 꽃처럼 피어나는 너에게 언니가 너무 슬픈 노래 얘기를 한 것 같은데, 나름대로 뜻이 있어서야. 네가 그렇게 밝고 환한 이유는 너의 말라이카를 갖고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현대판 지참금 같은 것으로부터도 자유롭게 두 사람만의 힘으로 형편껏 미래를 설계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이 어려운 때 누군가의 힘에도 기대지 않고, 소박하게나마 둘이서 모든 것을 헤쳐 나가겠다고 작정한 그 용감함이, 두 사람을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겠지. 결혼해서도 그런 자유와 행복, 절대 빛이 바라지 않길 바래.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313일 방송> a.

 

2.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17-27)”을 읽었습니다. 저는 가능하면 주일 아침 8시에 평화방송에서 진행하는 배광하신부의 <신학산책>을 시청하려고 노력합니다. 어제 방송에서는 자신의 신학교 시절을 추억하는데, 저의 옛 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신학교 시절 무려 8학기를 여름방학마다 재시험을 치룬 일화였습니다. 학기 중 통과 점수를 채우지 못할 경우, 여름방학 기간에 보충 수업과 함께 재시험을 치루는 제도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 마디로 낙제생 대열에 있었던 분이 저렇게 훌륭한 신부님이 되셨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죽기보다 싫었다던 그 재시험이 그 분을 하나님께 진실하게 다가설 계기를 만들어 주셨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다니의 라자로를 살리신 기적 일화를 통해서 부활의 꿈을 꿀 희망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라비 라자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을 때, 주님은 그 3남매의 고향 베다니를 찾아가십니다. 마중 나와 있던 마르다는 주님을 만나자 주님의 부재(不在)가 오라비를 죽게 했다고 원망조로 얘기를 합니다. 마르다는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일화나, 중병의 환자들을 말씀 한 마디로 고치신 수많은 기적들을 목격했던 산 증인으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주님의 현존을 시각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지근거리에 있어야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이곳 우리들 곁에 오셨으니까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 것이다고 하셨고,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 알고 있다 대답합니다. 그때 주님은 믿음의 범위를 가르치십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며, 살아서 믿는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믿음의 능력을 얘기하기 전에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만큼 오해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은 예전 부흥사나 요즘도 평범한 목사들이 말하듯,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라는 수준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믿음은 인간의 자기 확신이나 희망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적절한 예화가 있습니다. 제자를 부르신 장면을 공관복음서가 취급하고 있는데(1:16-20, 4:18-22, 5:1-11), 요한복음서 21:1-14에서는 부활 후 고기잡이의 옛 생활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나타나신 일화로 기록되었는데, 이들 말씀에서는 고기를 잡지 못하고 그물을 씻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오른 편으로 그물을 던지라 말씀하자,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정을 말씀드린 후,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 이다.”고 고백한 후 그물을 던져 무려 153마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확신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153마리의 고기를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나미 회사 사장이 그의 볼펜에 153을 새긴 이유라고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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