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581(2022. 2. 17. 목요일).

시편 시 59:4-5.

찬송 23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막내에게> 내 마음을 환히 다 읽어낸 너의 편지 잘 읽었다. 내 마음을 읽는 일이야 막내 네 말대로, 내 연기가 서툴렀으니 쉽게 읽을 수 있었을 테지만, 바쁜 중에 편지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도 걱정하는 마음에 부랴부랴 반창고라도 붙여 주어야겠다는 심정으로 의젓하게 편지를 써 보냈구나. 동네 빵집 앞에서 곰보빵을 사내라고 땅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울어대던 우리 막내가,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는 일이 신기하기만 했는데, 이번 편지를 보니 이젠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동료처럼도 느껴지는 구나. 하긴 이번에 통화하면서도 네가 많이 담대해졌다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 예전 같으면 바빠서 길게 전화통화 하기도 힘들었을 시간에, 제법 통화가 길어져서 난 걱정이 좀 됐어. 그런데 넌 담담하게 말하더구나. 나도 절약에 절약을 하면서 사는데, 다른 사람들이 외식비 절약하는 것 원망하며 걱정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했던가. 세상에 나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고, 그 이웃의 사정도 내 사정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헤아림이 느껴졌었어. 그리고 그런 헤아림이 두려움을 이겨낼 만한 담대함을 선물 하는 걸 테고 말이야. 너의 그 말을 듣는데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나기도 하더라. 곁에 있는 누군가가 넘어지는 것을 보면서, , 경쟁자 하나가 넘어졌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라지. 누군가가 넘어졌다는 것은, 그 언저리쯤에서 나도 넘어 질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래. 그러니 내가 넘어진 듯 아파하면서 얼른 손을 내미는 사람이 현명한 거라더구나. 쉽지 않은 시기를 슬기롭게 잘 견뎌내는 네가 자랑스럽다. 또 연락하자.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9219일 방송> b.

 

2.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으신 예수 1(22-30)”을 읽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3대 절기가 있는데(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여기에 하나 더해져서 수전절(혹은 봉헌절)이 있습니다.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때 예루살렘 성전이 유린당하고 그 후에 회복하고 지키는 절기로, 8일간 진행되었고 기슬레월(12) 25일에 시작됩니다. 훗날 유대인 사학자 요세푸스는 빛의 절기라고 불렀습니다. 이 수전절에 예수께서 성전 안의 솔로몬 행각을 거닐고 있을 때 유대인들을 만났고,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조이지 말라며, 그리스도인지 여부를 속 시원히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는 절기였으니 더욱 더 메시아 대망에 대한 관심이 솟아났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알아듣게 얘기했는데도 못 알아듣는 것은 내 양이 아닌 때문에 믿지 못하고 있다 하시며, 다시금 목자와 양의 관계를 언급하십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양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인데, 그들이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때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대망하는 목적이란 메시아가 하실 일이 인간 구원이고 영생이라 할 때, 주님은 간접적으로 당신 자신을 메시아(그리스어 그리스도)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어쩌면 유대인만큼 오랜 시간 신앙적으로 훈련받은 민족은 없을지 모릅니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애급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탈출하는 40년이란 긴 시간동안 그들은 신앙의 의미와 목적을 훈련받았습니다. 그들 신앙의 한 복판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주인이시라는 것과 어떤 시련과 역경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약하면 그들 삶의 한복판에 늘 하나님을 모셔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불가능한 문제가 있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한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없는 메마른 광야에서 날마다 필요한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뜨거운 사막의 열기와 추운 사막의 밤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체험한 것입니다. 심지어 바위에서 샘물이 솟게 해서 타는 목을 축여주셨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끈 40년의 광야생활은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셔야 한다는 신앙 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런 신앙을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잃어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을 따르는 삶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믿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신앙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세상을 구하러 오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강력한 군주, 막강한 군대의 힘, 화려한 권력을 가진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니 마구간에 오셔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신 주님을 외면한 것입니다. 섬기며 동행하는 메시아가 아니라 지배하는 권력자를 기다렸다는 점에서, 현대의 교회 역시 동일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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