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40(2022. 11. 3. 목요일).

시편 시 105:43-45.

찬송 21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레시아 깊은 밀림에 살던 세노이 부족에게는, 아침마다 둘러앉아서 간밤에 자기가 꾼 꿈을 얘기하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답니다. 아침마다 꿈 얘기를 하고 그 꿈에서 일어난 일을 현실에서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의논하는 게 그들의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데요. 이를테면 꿈을 꾸었을 누구에게 해를 끼치는 꿈을 꾸었을 경우, 다음날 그 사람에게 사죄의 선물을 해야 마땅하다고 믿었답니다. 뿐만 아니라, 사죄의 선물을 받은 사람은 그 뒤로, 그 사람을 용서해 주는 꿈을 꿔주기 위해서 진심으로 노력을 했고요. 70년대가 들어서 그들이 살던 숲 지대가 개발되면서, 세노이 족도 그들의 독특한 풍습도 사라지게 됐다는 데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않았던 세노이 족, 그들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우리도 꿈속의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 여러분은 간밤에 어떤 꿈을 꾸셨나요?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7112일 방송>

 

2.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36-50)”을 읽었습니다. 시몬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신 주님은 폭넓게 교제를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의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를 가차 없이 비판하신 주님께서 그들의 식탁초대에도 응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행실이 나쁘다고 소문난 한 여인이 주님 뒤쪽으로 다가와 주님의 발에 눈물을 떨어트리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눈물을 닦고서 입을 맞추고 값비싼 향유를 붓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물을 부어주며 발을 씻게 하는 관습이 있는데, 먼지투성이의 길을 걸어온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존경과 경의의 표시로 향유를 부어주는 예외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한 주인 시몬은 예수님이 제대로 된 예언자라고 한다면, 이 여인이 얼마나 행실이 나쁜 사람인지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신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사채업자에게 빚진 사람이 둘 있었는데, 한 사람은 500데나리온을 다른 한 사람은 50데나리온의 빚을 졌는데, 두 사람 모두 갚을 길이 없는 것을 알고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을 때,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사채업자를 사랑하겠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시몬의 대답은 더 많이 탕감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비유에서 현실로 돌아와,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내 발을 닦은 후 입을 맞춘 후 향유를 부었으니, 누가 더 많은 죄를 용서 받았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의롭다 생각한 바리새파 사람이나, 정 반대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몹쓸 죄인이라고 비난받는 여인이나, 모두 예외 없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러운 발을 씻어주는 관습을 빗대어 죄의 용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는 모든 더러움의 최종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씻는 것은 용서의 표징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그 눈물 자국을 씻은 후 향유를 붓는 일은, 죄를 씻는 전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500데나리온과 50데나리온의 빚이란 죄의 크기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죄의 크기란 그렇게 수량화(數量化)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생명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가진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죄에 대한 용서 역시도 크고 작은 것으로 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사실을 암시하며 확인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의중에서는 죄의 크기는 물론 용서의 크기도 셈하거나 경중을 따질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모두가 파괴적이며 심각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모든 종류의 죄에 대해서 한없는 은혜와 긍휼로 씻어 주시고 지워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용서(아페시스, 아피에미)에 대해서 무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베푸시는 용서란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것이며, 없애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용서로 모든 죄는 그 자취조차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그 죄로부터 그 어떤 정죄도 형벌도 받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우리 크리스천을 향해서 용서받은 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로부터도 죄를 물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3. 그제는 도봉산 둘레길 산책을, 어제는 용문행 전철 독서여행을 가졌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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