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41(2022. 11. 4. 금요일).

시편 시 106:1-3.

찬송 227, 22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커피가 유럽을 변화시켰다는 말이 있습니다. 커피가 유럽에 상륙하고 나서 사람들은 술에 취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것에서 벗어나서, 커피를 마시며 맑은 정신으로 대화를 나누고 진지한 토론을 하게 됐다고 하네요. 우리에게도 커피는 이제 단순한 한 잔의 음료만은 아니겠지요. 커피가 포함하고 있는 분위기, 커피 향처럼 기억나는 사람, 커피가 있는 풍경, 커피가 탄생시킨 문학과 음악까지, 커피는 우리에게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 되어 버렸습니다. 늘 아침 식사로 원두커피 한 잔이면 족해했던 베토벤, 또 친구들과 밤늦은 비엔나의 카페에 앉아있던 슈베르트, 파리의 카페의 한 구석 자리에서 글을 쓰던 헤밍웨이, 카페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던 피카소, 커피 향과 더불어 이런 이름들 떠 올려 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14일 방송>

 

2. “예수를 도와드린 여자들(1-3)”,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4-8)”,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9-10)”, 그리고 씨 뿌리는 비유의 설명(11-15)”을 읽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매우 짧은 구절들임에도 불구하고 표제어를 따로 붙인 것은 이 말씀들이 한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장소와 시간 그리고 주제가 다른 일화를 묶어둔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분은 예수님의 어록집(Q자료)를 통해서 가능해 진 것입니다. 그리고 차제에 특히 공관 복음서의 말씀들은 각 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의 시대 배경과 신학적인 관심사로 취사선택되었을 것을 짐작할 때 그런 가정은 타당하다 하겠습니다. 우리들 역시도 한 설교자의 말씀을 여러 사람이 듣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게 될 때, 순서나 강조점 등이 다를 수밖에 없는 점을, 이런 취사선택의 차이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때 네 복음서의 차이점 때문에 교회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해결방안으로 이 네 복음서를 한 권의 복음서로 만든 어리석은 역사가 있었습니다. 주후 170년경 시리아의 타티안(Tatian)에 의해 만들어진 <디아테싸론-Diatessaron>이 바로 그런 번역본입니다. 5세기에는 복음서들 뿐 아니라, 행전, 바울 서신,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 그리고 요한일서가 포함된 <페쉬타-Peshitta>란 역본을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의 차이점을 없애기 위해서 이런 류의 번역본은 어리석은 시도였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중심으로 한, 후속 문제들 가령 비유를 말씀하는 이유나, 비유에 대한 해설을 집중적으로 살필 수 있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유란 어떤 용어나 또는 어떤 사건을 평소에 잘 알고 있는 평범한 이야기로 빗대어 표현하는 문학적인 기법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비유를 끌어옴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이해시키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서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마태복음(13:1-9)이나 마가복음(4:1-9)과는 달리 이른바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 끌어온 비유라는 점이 생략돼 있어서, 왜 이런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밝히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공관복음서 상의 본문을 서로 대조함으로 천국을 설명하는 비유라고 보완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씨 뿌리는 비유의 목적은 천국의 출현이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이지만, 마침내는 옥토에 뿌려진 씨들에 의해서 충만하게 완성된다는 것을 말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비록 더디 올 수도 있고,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반드시 천국은 완성되어 우리들 앞에 출현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셋째 단락은 비유가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잘 알아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도록 주신 말씀이 또 다른 묵상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비유를 통해서 천국에 대한 이해가 더 심오해지고 다른 차원으로 확대될 수 있는 개연성을 말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넷째 단락은 비유 자체를 해석하는 기준을 만드는 좋은 근거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이른바 종래의 문자적 해석, 도덕적 해석, 그리고 영적 해석과 은유적 해석 등, 4중의 해석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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