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81(2022. 12. 14. 수요일).

시편 시 109:29-31.

찬송 51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명절인 한 가위나 정월대보름이 되면, 달빛 아래 여럿이 모여 했던 민속놀이가 있습니다. 강강술래인데요. 손을 잡고 둥글게 도는 것 외에 특별히 어려운 형태나 가사가 잇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지금도 국가 대항의 운동경기에서 승리하거나, 모두가 함께 할 흥겨운 일이 있을 때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을 만들고 강강술래를 하곤 하지요. 이 강강술래는 전라도 해남의 중요 무형문화제입니다. 해남 출신의 시인 이동주가 고향에서 본 강강술래를 시로 옮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할 이동주 시 유신 곡 <강강술래>입니다.

    “여울에 물린 은어 떼, 삐삐꽃 손들이 둘레를 짜면 달무리가 빙빙 돈다. 뛰자 뛰자 뛰어나 보자 강강술래, 강강술래. 목을 빼면 설움이 솟고, 백장미 밭에 공작이 취했다. 깃 폭이 찢어진다. 갈대가 쓰러진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한국적인 정서가 깊게 느껴지는 곡입니다. 격렬하게 돌아가는 춤사위 또 농악대의 빠른 몸놀림이, 시어와 음악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서, 강강술래를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러한 작품이지요. 강강술래에 시를 지은 이동주와 이 곡을 쓴 유신은 두 살의 나이차가 있었습니다만, 어려서부터 함께 놀았던 전라남도 해남의 같은 고향 동료였습니다. 이동주가 1955년에 출판한 동명의 시집에 표지 시였던 것을 작곡가가 마음에 들어 하던 중에 1974년 가곡으로 작곡을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변 운의 것과 동명의 가곡 <떠나가는 배> 그리고 <잊을래도>, <국화 옆에서> 같은 작품을 통해서 느껴온, 작곡가 유신의 개성 있는 음악성이 담겨져 있는 그러한 곡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214일 방송>

 

2. “에브라임을 벌하시는 야훼의 손(8-17)”을 읽었습니다. 흔히들 심판 하면 최후의 심판을 떠올리기 쉽고, 또 그 심판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다양합니다. 현세적인 심판만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여러 차례 겪을 수 있습니다. 잘못을 저지를 때나, 때로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받거나, 굉장히 무섭거나 아주 가볍거나 말입니다. 이런 현세적인 심판들은 대개 하나님의 대리자들이 집행관으로 등장하는데, 그 기준도 다양합니다. 세속적인 법률로 다스리기도 하고, 그 집행관의 성향에 따라서 즉결 심판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매우 불완전하고 때로는 불공정할 수 있습니다. 한때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는 게 있어서 애먼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초를 겪기도 하고 심지어 죽음에 내몰리게도 되었습니다. 종교 심판이라는 것은 가장 참혹했는데, 현재 아랍문화권에서는 여전히 세력이 든든한 심판입니다. 오늘 본문은 북왕국 이스라엘 일명 에브라임에 내린 심판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같은 동족인 남왕국 유다인들로부터도 엄청난 심판을 당해야 했습니다. 미움을 받았고, 야훼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사람들이라는 악담도 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솔로몬의 성전을 섬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다시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교만했다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련이 와도 넉넉하게 감당하리라 헛소리를 하였습니다. 무너진 흙벽돌을 대신해서 다듬은 돌로 쌓고, 돌 무화과나무가 찍혀 쓰러지면 더 좋은 송백을 심겠다고 말입니다. 이런 교만한 사람들을 괘씸하게 여기신 하나님은 주변의 나라들을 보내셔서 마구 집어 삼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심판이 사실은 그들을 정신 차리게 해서 야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사랑의 회초리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두 번째 심판을 내리셨는데, 잘난 체하는 장로들과 거짓을 가르치는 예언자들을 하루아침에 망하게 하시고, 고아와 과부들까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죽음에 내몰린 것입니다. 지도자를 잘못 만난 불쌍한 백성들까지 죽음의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모두 불경하여 악을 행하였다 하니, 그 순진무구한 백성들 역시 시대의 흐름을 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아브라함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는 방불케 하는 온갖 음란한 일들이 환한 백주에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정치 사회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도 점잖게 침묵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 홍대와 강남일대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쉽게 헌팅을 할 수 있고 새털보다 더 가볍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상적인 교제를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방송에서까지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누구 새끼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국입니다.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는 것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으니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문제가 이것이었습니다. 불의가 불처럼 타오르게 될 때, 가시덤불과 엉겅퀴 뿐 아니라 무성한 숲까지 활활 태우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누가 있어 이 악한 시대에 독야청청할 수 있다 말할 수 있을까요? 해아래 모든 만물이 죄 가운데 살고 있을 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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