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880호(2022. 12. 13. 화요일).
시편 시 109:26-28.
찬송 10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중문화가 큰 힘을 가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티브이가 있는 이웃집으로 모였고, 텔레비전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은, 힘든 시기에 위안이 되었지요. 음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50년대 암울했던 그 시기에 하루해가 저물 무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구슬픈 노래는, 사람들의 발길을 집으로 더 빨리 재촉했지요. 그 시기 사람들의 향수와 애상을 달래주던 곡은 김대현의 자장가였습니다. 그는 이처럼 서정적이고 애수어린 곡들을 많이 작곡을 했지요. 오늘 소개해드릴 <들국화> 역시 그의 이러한 음악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흰 구름이 떠도는 가을 언덕에 한 떨기 들국화가 피고 있는데, 그 누구를 남몰래 사모하기에. 오늘도 가련하게 구름만 돈다. 실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언덕에, 말없이 들국화가 피고 있는데, 그 누구도 안 오는 외로움 속에, 오늘도 가슴 태워 기다려 본다.”
많은 연주자들이 가을에 즐겨 연주하는 곡입니다. 들국화의 청초한 이미지가 연상되는 곡이지요. 시를 지은 장수철은 시인이자 아동 문학가였습니다. 많은 재킷에 보면, 그 작사가가 정태민이라고 표기 되어 있습니다. 정태민은 장수철의 가명이었지요. 그가 방송국에 근무할 당시, 가곡 보급을 위해 지은 이름입니다. 장수철이 이끌었던 선명회 합창단이 해외 공연에서, 김대현의 대표곡인 <자장가> 연주회 호평을 받은 것이나, 이곡 <들국화> 외에도 <5월 훈풍의 노래>, <흰 구름이 가는 곳>, <봄맞이 노래>에서 또다시 호흡을 맞추었다는 데서 둘의 친분이 남달랐음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장수철의 시와 김대현의 서정적인 멜로디의 만들어낸 조화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적인 곡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12월 13일 방송>
2. “메시아와 그의 나라(2-7절)”을 읽었습니다. 어제는 <어쩌다 어른>이라는 유튜브를 보다가 많이 우울해졌습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평생 바깥으로만 돌던 남편이 늘그막에 가족들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더욱 서글픈 것은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남편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왕따가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대화의 중심 주제는 근엄하고 무뚝뚝한 남자의 모습보다는 다정다감한 가족 구성원으로 사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었지만, 어디 남자의 얘기만이겠습니까? 늙은이가 되면 남자건 여자건 모든 면에서 초라해지고 어눌해지는 것들을 피해갈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그늘졌던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메시아와 그의 나라”라는 표제어 자체만으로 새 힘을 얻는 기분이었습니다. 구약의 메시아는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라는 말로 바뀝니다. “구세주”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메시아 기대는 종교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도 추구된다는 말입니다. 가령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 때, 누군가가 이런 힘든 국면을 바꾸어주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이른바 영웅을 찾는 심리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런 행운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나폴레온이나 히틀러 등 독재자들에게서만이 아니라, 자유 민주주의 시대 곧 처칠이나 케네디와 같은 정치가들에게도 이런 희망을 찾았습니다. 어느 정도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었으나 항구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삶의 고달픔은 반복되는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메시아와 그의 나라를 암시하는 말씀들이 가득합니다. 첫째는 어둠속을 헤매던 사람들이 큰 빛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2-3절). 그 때의 기쁨을 추수의 기쁨과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을 나눌 때와 같다 했습니다. 둘째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멍에를 내려놓게 하고, 힘든 멍에를 지웠던 자들의 채찍을 꺾으시겠다 하십니다(4-5절). 짓밟던 군화와 피투성이 군복을 불태우시겠다 하십니다. 셋째는 새로운 왕 평화의 왕이 태어나실 것이라 하십니다(6-7절). 세상을 평화와 정의로 다스릴 왕이 오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메시아가 어떤 분이시고,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밝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시는 분이며, 정의와 평화로 다스리실 분이라고 말입니다. 여전히 우리는 어둠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앞이 캄캄한 세상이 언제나 환한 빛으로 가득 채워질 것인가 답답하기만 합니다. 거짓과 불의가 활개를 치는 세상을 언제까지나 숨을 죽이고 지켜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멍에를 메게 하고 교활하게 법 위에 군림하는 악마들의 시간이 지나갈 것을 믿습니다. 메시아의 날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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