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58호(2023. 3. 1. 수요일).
시편 시 119:127-128.
찬송 8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 신동엽은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 되던 1969년, 안타깝게도 간암으로 요절했습니다. 그가 누렸던 짧은 서른아홉 해의 생은 우리나라 역시 가장 크나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던 때였지요. 일제 강점기에 청년 시절을 보내고 한국 전쟁과 과도기를 거쳐서 잠시 평온한 시기를 맞긴 했습니다만, 정치적인 대립으로 얼룩진 1960년대 역시, 편치 않은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정치적인 혼란은 당시 지식인들에게 큰 절망과 큰 사상의 혼란을 초래했지요. 시인 신동엽 역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운 그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 지어이. 그리운 그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숨결들에 숲속에 살아갈 지어요.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되었거든 바람 담을 지네, 바람 되었거든 인정 담을 지네. 그리운 그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 지어이.”
4.19 혁명이후 많은 노력들이 있습니다만, 하지만 정치적인 기대와 희망은 많이 무산된 뒤였지요. 시인 신동엽의 문학은 구체적으로 바뀌어 갑니다. <껍데기는 가라>, <금광>과 같은 그의 대표작으로, 1960년대 대표적인 참여 시인으로 손꼽혔던 시기가 바로 이때였습니다. 하지만 1969년 데뷔 10년 만에 그는, 간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의 절친한 지우였던 시인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지 1년만이었습니다. 시인 신동엽은 병석에서 요양하면서, 스스로 죽음을 예감했다고 합니다. <산에 언덕에> 이 시는 시인 신동엽이 죽기 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었지요. 부여 나성터 백마강변에 서 있는 시비로도 전하고 있습니다. 시인 신동엽의 서정적인 시혼이 느껴지는 그러한 작품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3월 1일 방송>
2. “니고데모와의 대화(1-15절)”을 읽었습니다. 한 밤중에 주님을 찾아온 유다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는 성경에 3번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초막절에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밀 때(요 7:25-44), 그리고 주님께서 운명하신 후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장사 지내려고 할 때(요 19:38-42)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선생님처럼 기적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때 주님은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래서 새로 남, 거듭 남에 대해서 두 분이 토론을 합니다. 니고데모는 어떻게 다 자란 사람이 모태로 들어가 또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육과 영의 차이를 구별하게 하십니다. 육에서는 육이 나오고, 영에서는 영이 나온다고 말입니다. 생각의 결이 완전히 다른 대화입니다. 그러면서 바람을 예로 드십니다. 바람은 소리만 들릴 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들은 이와 같다고 말입니다. 대화가 차원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자, 니고데모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되묻자, 주님은 이름난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고 하시며, 알고 있고 본 것을 말하고 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이 세상일을 말하는데도 믿지 않는다면,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놋 뱀 사건을 끌어오십니다(민 21:8-9).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구리 뱀처럼,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십자가를 암시하신 것입니다.
장대에 높이 달린 놋 뱀 사건은 유대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던 유대백성들을 불 뱀에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의 탄원으로 하나님은 장대 끝에 놋으로 만든 뱀을 달아놓고, 불 뱀에 물려 주어가는 사람들에게 그 놋 뱀을 바라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놋 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살아나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은 죽도록 내버려 둔 사건입니다. 이를 주님은 십자가의 예표로 삼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선행이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 인생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려고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장대 위의 놋 뱀이나, 십자가에서 전해오는 어떤 빛에 의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놋 뱀을 바라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가 구원의 열쇠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한다는 구체적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아멘.
3. 오늘은 기미 만세운동 104주기 기념일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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