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56(2023. 2. 27. 월요일).

시편 시 119:121-123.

찬송 34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보리밭>의 작곡가 윤용하는, 생전에 그를 알았던 지인들이 윤용하의 얼굴과 더불어서, 가난과 순리라는 단어를 떠올릴 정도로, 고난의 삶을 살았던 것으로 전합니다. 재능은 뛰어났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현재의 삶이 조금 안정될만하면, 그는 늘 복잡한 시대 상황 속에 휘말려야 했지요. 그토록 자신의 삶이 불우했음에도 불구하고, 윤용하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나라의 안팎이 혼란스러울수록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줄 어린이를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말이지요. 어린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나뭇잎 배>, <다람쥐>와 같은 100여곡의 동요를 작곡하는 것으로 증거되기도 합니다. 그의 맑은 음악 혼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지요.

    “도라지꽃 풀 초롱꽃, 홀로 폈네. 솔바람도 잠자는 산골짜기, 예부터 돌돌 흘러온 흰 물 한줄기, 한밤중에 초록 별 내려 몸 씻는 소리.”

    윤용하가 43의 나이로 별세한지 20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대표곡인 <보리밭>이 독집 레코드로 나왔습니다. 이어 윤용하를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생전에 윤용하와 친분이 있었던 시인 박화목은 그 자리에서 윤용하에게 시를 헌정합니다. 소나무 위에 고고한 한 마리 학으로, 윤용하의 모습을 추억하면서 말이지요. 동화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박화목과 윤용하의 감성이 잘 어우러진 곡입니다. 은은하고 소박하게 흰색과 보랏빛으로 피는 도라지꽃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곡의 분위기 통해서 느껴집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228일 방송>

 

2. “가나의 혼인잔치(1-12)”을 읽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오늘 저는 포도주가 동이 난 혼주의 입장이 되어서 읽어보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손님들은 아직 많이 찾아오고 있는데, 음식이 떨어졌다는 과방(果房)의 얘기를 들었을 때, 이보다 난처한 경우는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인트폴에서 예배학을 공부할 때, 그곳 예배학 교수님의 안내를 받으며 매 주일 몇 교회를 방문했던 일이 있었는데, 차중에서 자신의 따님을 결혼 시킨 최근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른바 청첩장에 대해서 얘기를 나눴는데, 혼주 양가에서 50가정에만 청첩장을 보내기로 하고 혼주 가족들을 제외하고 100200명을 위한 음식을 피로연을 하는 음식점에 맡겨 준비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의 혼인잔치 같은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나의 혼인집은 시골 마을이어선 지는 몰라도 청첩장이 아니라 구두로 알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음식 준비를 대충 계산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잔치가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 포도주가 다 떨어진 것입니다. 근처에 포도주 가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포도주를 구해 올 아무런 대안이 없을 때, 혼주는 그 답답하고 난처함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에게 귀띔을 한 일이었습니다. 축하하러 꽃단장을 하고 온 하객들에게 김빠지는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얘기를 할 수도 없었을 테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리아는 예수님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알렸고, 예수님은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제게도 이런 난처한 일들을 만나 기적같이 해결했던 전설이 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대학생활 첫 달을 지낸 후였습니다. 기숙사에 들어간 것으로 안심만 할 수 없었을 때입니다. 대학 공부를 단 돈 일만 원으로 하라고 주셨는데, 첫 달 기숙사비를 내고 나니까 다음 달 기숙사 비를 포함해서 절대적으로 학자금이 부족할 때, 제 얼굴엔 근심 빛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때 나이든 친구 하나가 제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 무슨 고민 있어요?” 그때 부끄러움도 잊은 채 제 사정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잘 됐다며 자신이 지금 아르바이트로 초등학생 하나를 가르치는데 그만 둘 생각인데 제게 맡아 가르쳐보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엄청난 난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 이듬해 장가를 가야 할 처지였는데, 그날따라 눈이 많이 와서 자동차도 다 끊기니, 백부님과 형님은 물론 가족 누구도 험하다는 육십령고개를 걸어서 넘기를 마다했습니다. 그래서 신랑과 여동생 그리고 교회 목사님 단 세 명이 상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장을 오래 하셨던 장인 영감님은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교육감, 군수, 경찰서장 등 마을 유지들이 다 오겠다 했는데, 신랑 집 상각이 초라하니 도둑장가를 온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저녁 늦게 신랑 우인 한 명이 합류한 4명이 전부였습니다. 장인의 체면을 깎아도 한참 깎았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신랑과 동행하신 목사님은 물론 하나 뿐인 신랑친구도 일당백을 한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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