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65(2023. 3. 8. 수요일).

시편 시 119:145-148.

찬송 23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천여고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작곡가 최영섭에게, 어느 날 KBS에서 작곡 의뢰가 들어옵니다. 한국 전쟁 11주기를 맞아, 조국의 산하를 예찬하면서도, 타국에 있는 우리 동포들을 위로할 수 있는, 그러한 작품을 부탁했지요. 최영섭은 바로 시인 한상억을 찾았고, 한상억은 한 달 만에 우리의 산과 강, 바다를 주제로 한 <아름다운 내 강산>이라는 큰 제목의 서시 아홉수를 지어서 건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운 금강산>은 바로 이 한상억의 시 아홉수를 토대로, 최영섭이 완성한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 중 한 곡이었습니다.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래 산해 만 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한 풀릴 때까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35일 방송>

 

2.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1-18)”을 읽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일화가 있습니다. 실로암 못에서 물을 마신 후에 베데스다 못으로 가려고 했는데, 지도에 베데스다란 지명이 쓰여 있지 않아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팔레스타인 소년 하나가 지나가기에 붙들고 사과 한 알을 내 보이며 베데스다 못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해서 찾은 곳은 안나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찾은 베데스다 못은 약 5m 쯤 계단으로 내려가야 더러운 오물로 가득 찬 못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간헐천(間歇川)으로 온천의 일종으로 계속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니라 일정한 시간을 두고 흘러나오는 온천이었습니다. 온천수가 나올 때 병든 사람 중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온천수에 몸을 담가도 병이 낫지 않으니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생겼을 것입니다. 온양 온천장엘 가면 세종대왕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여러 왕들이 다녀갔다는 역사적인 기록이 있는데,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가는 식의 얘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온천엔 38년 된 병자도 있었고, 그는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 갔고, 주님은 그에게 일어나 요를 들고 걸어가라.” 명하시자 그는 병이 나았다고 하였습니다.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38년이란 인생의 반평생을 질병에 노예가 되어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 사람의 병명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어떤 병이라 하더라도 38년 동안 앓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걷는 것은 물론 말하는 것 먹는 것 움직이는 모든 것에서 어눌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불쌍한 사람을 주님께서 알아보시고 그의 병을 말씀 한 마디로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날이 유대인들이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될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38년 된 환자가 일어나 걷게 되었다는 소식은 베데스다 못을 예루살렘의 핫 플레이즈로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자초지종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전해지기 시작했을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 수호를 생명처럼 여기는 유대인들은 이제 38년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사람에게 찾아와서 형사처럼 따져 묻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나무라면서, 어떻게, 누가 고쳐주었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이른바 안식일 논쟁은 예수님께서 직면하셨던 최대의 문제였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비극의 도화선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도대체 안식일 논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에 대한 해석의 차이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라는 쓰디쓴 경험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강성모드로 바뀐 것입니다. 다윗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이나,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지성소의 72덩이 진설병을 먹은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해석을 가능케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율법의 정신을 제대로 지키는 것에 강조점을 두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의 계명이 가진 정신은 생명을 풍성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배려에서 출발했습니다. 생명을 건강하게 돌보기 위한 정신이라면, 고통당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돕고 고쳐주는 일은 피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히 힘써야 할 일이라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Posted by 박성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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