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7963호(2023. 3. 6. 월요일).
시편 시 119:140-142.
찬송 25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나 소설 같은 문학작품을 접하다보면, 깊은 공감과 감동이 울어 나오는 한 마디, 그 한 마디는 대단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거짓 없고 소박한 하나의 문구인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조병화의 시가 그러한 예들이 아닐까 하는데요. 조병화의 시는 일상적이고 소박했지만, 그래서 더욱 보통의 사랑을 하고,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작곡가들이 오랫동안 그의 시에 곡을 붙여 가곡으로 완성한 이유 역시 아마도 같은 이유에서였겠지요.
“푸른 하늘 안에서 종달새는 살고, 그대 가슴 안에서 나는 영영 산다. 꽃이 피어도, 바람이 불어도, 아, 영원한 노래, 하늘에 날개치고, 사랑의 날개는 그대 가슴 안에서, 황홀이 꿈 이룬다. 푸른 하늘 안에서 그대 종달새는 살고, 그대 가슴 안에서 나는 영영 산다. 사랑의 날개는 그대 안서서 살고, 그대 가슴 안에서 영영 나는 영영 산다.”
1950년 선보인 이 노래는, 당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막스 구를 위해서 만든 곡입니다. 작곡가 최영섭의 중학교 선배인 그는 최영섭에게 신식 결혼식을 할 테니까 식장에서 신부와 하객들에게 불러줄 축가를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지요. 같은 예술가로 친분이 두터웠던 시인 조병화와 테너 한상진이 역시 합세했고, 그렇게 당대 최고의 예술가가 모여서 <사랑의 날개>라는 축가를 만들어 냅니다. 결혼식장에 울려 퍼지던 낭만적인 선율은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못지않은 감흥을 자아냈고,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제 출발하는 부부에게 무엇보다 큰 행복을 안겨주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3월 3일 방송>
2. “예수와 사마리아 여자2(27-42절)”을 읽었습니다. 음식을 먹으러 나갔던 제자들이 돌아와 두 분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보고 의외인 듯 놀랐다고 분위기를 소개했는데, 두 분 사이에 일어난 일과 대화 주제에 대해서 묻는 이가 없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이 돌아오자 여인은 물동이도 버려둔 채 동네에 들어가 어떤 분을 만났는데 자신의 과거사를 다 알아맞혔고, 아마도 그리스도인지 모르겠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이 예수께로 모여들었다고 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과는 다르게 제자들은 식사를 하시자고 권하였지만, 주님은 당신에겐 그들이 모르는 양식이 있다고 대답하셨고, 제자들은 다른 누군가가 주님께 먹을 것을 갖다 드렸는가 수군거리자, 주님은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당신의 양식이라는 알 듯 말 듯한 말씀을 하신 후, 당신의 말씀에 경청하라 주의를 주신 다음에, 곡식이 다 익어 추수 때가 되었는데,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과 같이 기뻐하게 되었다며, 너희는 심고 돌보는 수고를 하지 않았지만, 거두는 임무를 맡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우물가에서 주님과 대화를 나눴던 여인이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을 데리고 주님께 나왔는데, 그 여자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주님을 자신들과 함께 묵으시기를 간청하였고, 그곳에서 이틀이나 묵으시면서 말씀을 들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증언인데 처음에는 여자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참된 구주인 것을 믿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고향을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이웃 마을에 사는 중학교 동창이 있는데, 자기 마을 교회를 잘 섬기는 장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중학생일 때 저의 전도로 신앙을 가졌다고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를 우리 집에 몇 번 데리고 와서 밥을 먹여준 일이 전부이고, 교회에 다니자고 말한 것은 한 두 번 이었던 것뿐인데, 훌륭한 평신도 지도자로 성장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그것이 우물가의 여인 역할이었구나 생각되었습니다. 열 서너 살짜리 신앙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고 감동시킬 수는 턱에도 미치지 못하는 때문입니다. 어설프게 전도하였지만 그의 마음을 감동 감화시키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셨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쉰 목소리로 외치는 전도자를 도봉산 입구에 가면 언제나 볼 수 있는데, 언제나 불쾌감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고압적인 말투에다 협박 투의 내용이 전도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그런 전도자를 통해서도 구원의 백성을 만드실 것을 생각하니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3. 지난 주말 도봉산 둘레길 산책 길에서는 엄청난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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