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07호(2023. 4. 19. 수요일).
시편 시 132:13-15.
찬송 51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늘 불행하다고 느끼는 불행 나라의 한 청년이, 큰 맘 먹고 행복 나라로 유학을 갔답니다. 혹시 좀 행복해 질 수 없을까 해서, 그 비결을 배우러 갔던 거지요. 하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지겹도록 행복만 구경하고 왔을 뿐, 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라고 했답니다. 반면에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기 위해서, 불행 나라로 유학을 왔던 행복 나라의 청년은, 무엇보다도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면서,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해 주신 불행 나라의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라고 했다나요. 마음이 행복한 사람은 불행으로 가득 찬 곳에 가서도, 결국 행복만 가득 느끼고 돌아온다는 그런 얘기인데요. 만약 우리가 그 얘기의 주인공이라면, 우린 지금 불행 나라에서 행복 나라로 유학을 와 있을까요? 아니면 행복 나라에서 불행 나라로 유학을 와 있을까요? 어떤 쪽이든 이번 주말에는, 정말 모두가 행복한 휴식이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8년 4월 20일 방송>
2. “제자를 위해 기도하시다3(20-26절)”을 읽었습니다. 주님의 중보기도는 제자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 의해서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결국 주님의 중보기도는 당신의 제자들인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중심 목적은 주님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가 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이런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깊이 성찰할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가 되는 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부산 신 구교 일치회에 관한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 모임을 만든 분 중의 한 분인 독일인 하 안토니오 신부님은 떡 메를 어깨에 걸치고 성 금요일 많은 성직자들과 함께 부산 시내를 행진하였습니다. 그 분의 주장은 모든 기독교 교파를 절구통에 넣고 떡메로 쳐서 서로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자고 설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 됨에 대해서 너도 나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섞어버리는 것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동일한 제복을 입는 군인처럼 통일을 해 버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들이 생기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각 교파들이 가지는 신학이 없어집니다. 십자가 군병처럼 살고 싶어서 만든 구세군도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화체설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도 사라지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루터교회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 것을 일치라고 이해한다면 그동안 자신들의 신앙적 가치를 위해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우리는 일치에 대한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나 됨의 원리로 세우신 의도를 따르는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아버지 그대로 계시고, 아들은 아들 그대로 있는 일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장로교인의 자신들의 신앙을 그대로 가지고서, 감리교인은 감리교인 그대로의 신앙을 가지고서, 유럽인들은 유럽인들이 간직해온 신앙을 가지고서,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정서와 신앙을 가지고서 일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당신들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서로 협력하고 존경하며 평화와 구원을 위해서 일하시듯 우리들도 그래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삶의 배경과 삶의 의미에 대한 이해와 가치가 다릅니다. 그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나쁘다고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 인정받고 존경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성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은총아래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과 생각과 신앙을 가지고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군인처럼 똑같은 제복을 입고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이해되지 않는 다른 사람의 성격을 억지 박수치며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취향과 신앙을 인정받으며 말입니다.
3. 오늘은 4월 학생 혁명 63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독재에 맞선 학생의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제는 아내와 캐나다에 사는 막내딸이 아산에 내려와서 방과 주방 냉장고 텃밭과 꽃밭 등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5월에는 밥 한번 먹자고 손님들을 청했습니다. 50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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