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19호(2023. 5. 1. 월요일).
시편 시 136:4-6.
찬송 43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 조지훈은 친구와 제자들이 그를 진정한 선비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멋과 풍류, 그리고 기품이 서린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문학에 재능이 남달랐고, 폭넓은 방면으로 교양을 쌓아서 신분의 구별 없이 누구와도 화통하게 이야기를 잘 나누었지요. 하지만 추상과 같은 선비의 기개 덕분에 일제 강점기에는 오대산에서 은둔을 하기도 했고, 한국 전쟁이 끝난 뒤에 독재 정권에 맞서 저항운동을 펼치기고 했습니다. 술을 좋아해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는 두주불사할 정도로 호쾌한 성품이기도 했지요. 친구들과 술자리를 벌이고 거나하게 술이 오르게 되면 시를 읊으면서 삶의 정황을 노래하는 것이, 선비 조지훈의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 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나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마디만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1952년 발표한 조지훈의 시집 [풀잎 단장]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민들레 꽃>이었습니다. 조지훈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방향을 갖고 있지요. 승무나 고풍 의상처럼, 우리 민족 고유의 말이나 선을 지닌 아름다움을 담은 고전 유형의 시, 그리고 서구 지향적인 감성과 언어로 담아낸 현대시였습니다. <민들레 꽃>은 후자였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시 속에 투영해 내고 있는 시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4월 29일 방송>
2. “이스라엘과 유다는 회복되리라(1-9절)”을 읽었습니다. 요즘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노라면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선수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크리스천 선수일 경우 성호 긋기를 하기도 하고, 이슬람일 경우 책을 펴 읽듯 두 손바닥을 활짝 펴며 기도를 합니다. 우리나라 기독선수들 중에는 두 손을 깍지 끼고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드립니다. 궁금해졌습니다. 뭐라고 기도할까 해서 말입니다. 승리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기도를 들으실 하나님은 난처할 것입니다. 상대팀 선수 중에도 같은 기도를 할테니 말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을 닦달하듯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되새길 이유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힘써 가르쳐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른 기도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가장 건강한 기도생활이고 신앙생활인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약 열흘 동안 묵상할 예레미야서는 노예가 된 불쌍한 자기 민족을 향해서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선포자가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희망을 말하는 사람,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기독교의 신앙을 희망의 실상(實像)이라고 풀이했습니다(히 11:1). 희망의 말을 되풀이해서 듣다 보면 어느 순간에 믿음이 되고 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 중에서는 자녀들을 격려했던 희망의 실체를 현실에 맞춤으로, 나중에는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신앙도 희망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레미야에게서 배울 점이 이것입니다. 그는 부단히 희망의 약속 혹은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입니다(4-7절).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야곱의 어깨에서 멍에를 벗겨주시고, 사슬을 끊어버리시겠다고 말입니다. 이런 엄청난 은총은 무엇 때문입니까? 어떻게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는데, 사내들이 산모처럼 배를 움켜잡고 쩔쩔매고 있다 하셨습니다. 피할 수 없는 고난의 때를 맞았다 하십니다. 그러나 “거기서 벗어나리라.” 주님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뽑고 세우신 당신 백성에 대한 뜻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될 것입니다. 떼를 쓴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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