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020호(2023. 5. 2. 화요일).
시편 시 136:7-9.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안서 김억은 우리 현대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오산 중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당시 제자였던 김소월을 시인으로 발굴해냈던 것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만, 그 스스로도 역시 뛰어난 시인이었지요. 1923년에 발표한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이었고, [오노의 무도회] 역시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 시집이었습니다. 김안서의 시집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작품이나 동양의 한시를 번역한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김안서가 번역한 시들은, 시대와 사상을 뛰어넘어 당시 우리의 정서에 맞게 옮겨진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 따라 그 님을 만나러가니, 길 떠났네 그 님은 나를 찾으러. 밤마다 어긋나는 꿈일랑 이면,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김안서는 제자였던 소월을 키워낸 인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만, 덕분에 제자의 명성에 빛이 가려지는 불운 역시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의 시에 담겨 있었던 지극히 한국적인 서정은, 제자 소월에 대한 모방으로 폄훼되기도 했지요. 안서 김억은 개화기 이후 시가 점점 산문화 되어가는 것을 염려했습니다. 시는 찰나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보다 뚜렷한 운율을 가진 효과적인 언어여야 한다고 말이지요. 황진이의 시조 <상사몽(相思夢>을 김안서가 번역한 시가 바로 꿈입니다. 번역시이지만 황진이의 시조와는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작품을 읽는 듯 합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5월 1일 방송>
2. “이스라엘과 유다는 회복되리라2(10-17절)”을 읽었습니다. 올해 저의 한국 나이가 일흔 아홉입니다. 공자는 일흔 살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했는데,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쫓아도 道에 어그러지지 않는다.”라는 뜻이 했습니다. 그런데 종심을 지나 9년을 더 살았는데도, 어리석은 욕심은 멈추지 않고, 진리(道)에 관한한 깨우치지 못한 일들이 부지기수임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내 처지를 아는 분이 알아서 해 주겠지.”라던 맹사성의 경지에 오를지 의문입니다. 우리들 신앙인들이 자주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뜻과 너무도 다른 내 뜻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종교인은 “하나님은 내 말을 잘 듣는다.”는 식으로 망발을 떠니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골백번 죽었다 부활해도 하나님의 깊고 높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조물주와 피조물의 한계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죄성이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어제의 말씀을 이어서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란 근본적으로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과 유다를 나쁘게 하지 않고 잘 해 주시려고 세우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찌하여 70년을 꽉꽉 다 채우도록 노예생활을 하게 하시는지 우리들 뜻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절망하고 슬퍼하고 배신합니다. 대부분의 인생들이 그 길을 어김없이 반복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런 절망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약속의 말씀을 전합니다. “나를 부르며 나에게 와서 빌기만 하여라. 그렇게 하면 들어주리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충돌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리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고집을 부리거나 땡강을 부리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수도 없이 많은 낯선 일들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독재자의 횡포를 그냥 쳐다만 볼 수 밖일 때도 있었고, 배고픔과 절심한 소망을 채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을 지켜만 보거나, 지금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영문도 모른 체 귀한 목숨을 빼앗기는 현실을 보면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발버둥치는 우리 같은 서민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바로 이런 답답하고 안타까울 때, 우리는 질문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선지자는 당부하고 또 당부합니다. “나를 부르며, 나에게 와서 빌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내 뜻이 그럴 듯 해 보여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땅 보다 높음같이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9).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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