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83호(2025. 2. 23. 주현절후 일곱째 주일).
시편 106:46-47.
찬송 1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은 그가 만년에 쓴 작품으로, 네프로도프와 카추샤의 연애를 말하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당시의 교회를 비판하고 있었다. 톨스토이는 <부활>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가 당시 교회가 의식, 기만에 찬 예배, 교회 안에서의 우상숭배 등에 대해서 “교회를 헐기 위해서 온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교회의 권위와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진리에서 벗어난 모습이었고, 죄의 심연에 빠져있는 교회가 다시 부활해야 세상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 주현절 후 일곱째 주일의 사도서간 고전 15:21-26을 본문으로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려고 합니다. 부활은 설명이 가능한 일이 아니고 신비입니다. 크리스천들이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또한 신비입니다. 부활 신앙은 가장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고, 가장 위대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같은 세상 안에 살고 있습니다(21-23절).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나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것만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현세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인간다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해서 머리와 가슴을 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나 희망을 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 차원 높은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두 종류의 사람을 우리는 비난할 수도 없고, 폄하할 수도 없습니다. 둘 사이에는 죽는 순간까지 서로 논쟁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를 두고 4세기의 교부 어거스틴은 사유/思惟의 영역이 다른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은 이성의 영역에만 만족하는데 반해, 신앙인들은 이른바 하나님의 영역에까지 확장하고 싶어 합니다. 인간은 이성의 영역에 만족하지 않고 훨씬 더 넓은 세계를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축복입니다(24-25절).
부활 신앙은 교회 안이나 교회 밖이 혼재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심지어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도 부활 신앙이 무엇인지조차 잘 가늠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 신앙을 줄기차게 붙들고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고서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사람의 사고/思考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고의 영역으로 불려 들어간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의 확실한 특징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세시대나 선지자들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눈으로 체험하였으나, 그 이후의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부활 신앙의 첫 열매이며 첫 대상입니다(26절).
부활은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예수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무덤에서 일어나신 사건 말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한 부활하신 날을 2천년 동안 지켜온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고전 15:20). 그러므로 이제는 죄와 죽음의 노예로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참 자유인으로 살아갈 특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할 힘을 가진 존재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과제는, 우리에게 주신 이 부활신앙을 끝까지 고백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과,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기는 것뿐입니다. 성령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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