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679호(2025. 2. 19. 수요일).
시편 106:35-37.
찬송 8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리교회를 시작한 요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런던 올더스게이트에서 열린 모라비안 집회에서,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듣고 회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훗날 웨슬리가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배 위에서 폭풍을 만나 공포에 떨고 있었을 때, 한 무리의 모라비안들이 그 파도 속에서 서로 손을 잡고 찬송하는 모습에서, 또 다시 회심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참고로 모라비안 형제회는 1457년에 설립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약 400명 미만이었으나, 오늘날은 전 세계 40개국에 1,700교회 약 14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이른바 “숨겨진 씨앗”이란 별칭을 가진 개신교 공동체이다.
2. “예수의 권한에 대한 질문(27-33절)”과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12:1-12)”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서에서 모두 취급하고 있는데(마 21:33-46, 눅 20:9-19), 공관복음서는 서로가 매우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세를 받으려고 종을 보내는데, 마태복음서와 마가복음서는 세 번을 보내고 있다 기술하는데 반해서 누가복음서는 네 번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 하겠습니다. 이 본문은 포도원 주인을 하나님으로 해석할 때, 소작인은 우리들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우리들 인간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임무 분담을 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하며, 동시에 우리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서 묵상할 주제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들 인간을 위해서 포도원을 맡기시고, 그들에게서 일정한 세를 받기로 하셨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세계에 살면서 이렇게 살게 하신 하나님께 일정액의 세를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인간을 대표하는 소작인들은 하나님의 것을 마음대로 사용하면서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거부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를 받으러 보낸 하나님의 종들을 쫓아내거나 심지어 죽였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인 것입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마련해 주신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자신들의 지혜나 의지 그리고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3번 혹은 4번이나 그 약속 위반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권리를 침해하고 인간 스스로 주인이 되려고 하는 죄를 지었다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아들의 역할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은 약속을 내팽개쳐 버리고 탐욕에 분이 멀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은 이렇게 악행한 인간들을 다 죽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섯 번째는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가장 중요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이 마련해 두신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하는 것입니까? 진지하게 돌아보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숲이 아니라 한 그루 나무에를 바라보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이 무엇인가를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고, 인간은 그들이 당연히 서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당신의 외아드님을 어리석은 인간들의 탐욕의 눈으로 죽게 하심으로 구주가 되셨다는 것을 바르게 알아야 하겠고, 본래의 삶 곧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으로 돌아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나 파멸이 아니라, 그 분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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