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19호(2025. 3. 31. 월요일).
시편 112:7-8.
찬송 1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존 밀턴의 <실명/失明의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신께서 빛을 허락하지 않으시고도 낮일을 명하시나이까? 하고 나는 어리석게 묻는다. 그러나 [인내]는 이 같은 불평일랑 가로막고, 곧 대답을 주니 ‘신은 인간의 작업이나 공물/貢物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가벼운 멍에를 최고로 견디는 자가 그분을 최고로 섬기느니라.’”
2. “예언자의 생은 상징이다(1-13절)”, “흩어졌던 백성이 돌아온다(14-15절)”, “끌려가리라(16-18절)” 그리고 “참된 신 야훼(19-2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넷째 단락입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과 징계를 한 사람이, 축복과 저주 또한 한 사람이 받게 된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불완전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모자람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 인간에게는 비관과 낙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며, 절망과 함께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존경하는 한 연로한 목사님이 어느 유명한 신학자이며 목사님께서 치매에 걸리셨는지, 하나님을 부인하며 임종하고 말았다는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이라며 서글픔을 토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삼십년이 흐른 후 저는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인간이 짊어진 최악의 질병이 치매인데, 이 질병은 제 정신을 잃게 만드는 질병이라고 합니다. 자식이나 심지어 아내까지도 알아보지 못하는 정신을 갖게 된다고 하니까 비극중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평생을 신앙의 길을 안내하고 가르쳐온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이는 제 정신을 붙들고 있는 동안만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제 정신을 놓은 순간부터는 전혀 다른 병든 정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제 정신이 빠져나간 사람을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두고 가타부타 할실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 때 신앙생활을 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참된 신 야훼”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신앙에 입문하게 되는 것은 우연일 수도 있고 필연일 수도 있습니다. 가령 저의 중학교 동창생 중 하나는 절간 바로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자연히 새벽 예불 소리를 들으면서 불교 신앙을 가질 만도 한데, 대학교까지 기독교 신앙적인 분위기에서 생활했습니다. 중학생 시절은 친구를 따라서 교회에 다녔고, 고등학교와 대학은 미션 스쿨이어서 매우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았는데, 한 20여년이 흐른 후 전철에서 만났는데, 승가대학원으로 진학하였고 조계종에서는 유명한 법사 스님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가 된 저를 향해서는 보살님 또는 거사님으로 불렀습니다. 비록 타종교일 지라도 지도자급이니까 그렇게 부른다는 풀이였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합장을 하고 하는 인사가 “성불/成佛 하십시오.”였습니다. 석가모니처럼 되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는 것이 최상의 목표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선지 몰라도 그 포교방식이 전투적이거나 경쟁적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수천 수만 년을 환생하며 성불에 이르려는 느긋함(?)이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번 뿐인 생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이해를 가르치는 기독교회와는 달리, 성불에 이르기까지 수억 년도 되풀이 되는 윤회라는 시간이해를 가진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가르치는 참 신의 의미란 그 이름으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훼라는 신의 이름은 자존자/自存者라는 뜻입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야훼를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신들이 사람에 의해서 그 지위와 능력과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 역시 자존자가 아니라, 진리를 깨우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니, 참 신이 될 수가 없습니다. 유대교를 차용한 기독교회는 야훼 하나님 신앙을 믿고 있습니다. 자존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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