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09호(2025. 3. 21. 금요일).
시편 109:23-25.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시대 유감>이라는 가사엔, “거, 짜식들 되게 시끄럽게 구네/ 그렇게 거만하기만 한 주제에/ 거짓된 너의 가식 때문에/ 너의 얼굴 가죽은 꿈틀거리고/ 나이 든 유식한 어른들은 예쁜 인형을 들고 거릴 헤매다니네/ 모두가 은근히 바라고 있는 그런 날이 바로 오늘 올 것만 같아/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숱한 가식 속에 오늘은 아우성을 들을 수 있어/ 왜, 기다려왔잖아 모든 삶을 포기하는 소리를/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섬뜩한 글도 있지만, 반항 끼가 가득한 가사다. 그러나 그들의 컴백에 가출했던 청소년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사도 실렸다.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 p.153.
2. “마땅히 멸망하리라(1-9절)”을 읽었습니다. 가끔 역사의식이라는 말을 해서 핀잔을 듣기도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도합니다만, 예레미야서를 읽을 때는 그런 악역을 누군가는 해야 하겠구나 싶습니다. 평화와 안정 그리고 부귀와 형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일 뿐, 현실은 정반대되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마주하게 될 심각한 시련과 고통을 막아주고자, 그 임무를 예언자들에게 맡겨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하소연 하듯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면 바르게 살며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찾아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예루살렘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입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말씀이 소환됩니다. 소돔 땅에 살고 있던 조카 롯을 구하려고 의인 10명까지 조건부로 걸었던 말씀 말입니다(창 18:32).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바르게 사는 사람/의인이 단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고삐 풀린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사자와 늑대 그리고 표범에게 물려 죽음을 면치 못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지은 죄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우상을 의지하는 불신앙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두고 간음과 창녀를 찾아다니는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사의식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는 것일까? 하고 말입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했던 E. H. 카의 말을 다시금 되풀이 하게 됩니다. 과거를 모르는 사람에게 현재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며, 현재를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는 과거를 일깨워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똑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지식수준이나 생활수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들에게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역사의식이 투철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들의 삶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힘겨운 삶의 무게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 반대로 너무도 만사형통하는 현재에 깊이 잠들어버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물 안에 갇힌 사람처럼 앞을 보아도 위를 보아도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생각할 때는, 과거고 미래 고를 따지지 않고, 당장 힘을 줄 것 같은 것들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무슨 일이든 생각대로 잘 풀려갈 때는 마치 제 자신이 슬기롭고 많은 노력을 한 때문에 그런 줄 알고, 교만에 빠지거나 허세에 기울어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이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결코 배움이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저는 유명 대학교수 보다는 시골에서 종지기를 하거나 초등학교 교사를 하거나 아예 봉사를 짓는 분들에게서 훨씬 더 많은 깨우침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을 차례로 부르면, 권정생 아동문학가, 이오덕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그리고 원경선 풀무원 원장님이십니다. 그리고 평생을 농사꾼으로 사셨던 저의 어머님이십니다. 역사를 배우지도 기억하지도 않을 때, 삶은 더욱 헝클어지고 막막해지고 캄캄해지는 것을 이스라엘은 너무도 자주 맛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악역을 담당한 예언자는 늘 공격적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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