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07호(2025. 3. 19. 수요일).
시편 109:17-19.
찬송 41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기도문엔 처음부터 끝까지 나 하나만을 위한 기도 말은 없다. 한결같이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다. 나만을 위한 기도는 곧 나만을 위한 삶이 있을 뿐이다. 주기도문은 앉아서 입으로 외는 기도가 아니다. 행동하는 기도, 살아 있는 기도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참다운 삶의 기도다. 하나님의 나라엔 특혜라는 건 없다.”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 p.46.
2. “돌아오라고 호소하신다(6-18절)”을 읽었습니다. 요시아 왕 때 예레미야가 받은 신탁/神託은 이랬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물론 남왕국 유다도 엇비슷하게 하나님을 배반한 것을 친히 목도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높은 산마다 그리고 무성한 나무 밑에서 우상숭배를 했다고 말입니다. 할 만큼 했으면 돌아오려니 했는데, 거짓부리로 돌아온 척만 했던 것입니다. 마치 바람피운 여인이 새서방과 놀아나더니 진심으로 후회하고 뉘우친 모습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보다 유다가 더 요괴 짓을 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북 왕국 이스라엘에 가서 외치게 하였던 것입니다. “나를 배반하고 떠나갔던 자들아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마음 약한 촌뚜기 정혼자처럼, 자신의 모질지 못한 마음을 솔직하게 실토하고 맙니다. 그리고 제발 남의 나라 신들을 찾아다니는 어리석은 정혼 녀에게 그만 헛짓거리를 멈추고 돌아오라고 애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처럼 유약한 분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배신자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얼마나 속이 쓰리고 아플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이 너덜너덜 만신창이가 되어 비틀거리고 있어도, 그들에게서 옛 모습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흔해 빠진 사랑이야기들은 처음부터 허망한 것임을 전제/前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철부지 사랑으로 시작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추한 사랑으로 끝나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이대별 사랑을 정리한 얘기가 있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10대 사랑은 달달해. 20대 사랑은 뜨거워. 30대 사랑은 결혼해. 40대 사랑은 시발거(헤어질 결심). 50대 사랑은 저리가. 60대 사랑은 귀찮아. 70대 사랑은 어디가. 80대 사랑은 돌아와. 90대 사랑은 같이가. 그러니 우리는 애시당초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시작했다 끝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할 때, 인용하는 성경 구절로 요 3:16과 롬 5:8을 들곤 합니다. 이를 두고 이른바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 3:16은 온 인류를 감싸 안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라고 한다면, 로마서 5:6-11은 십자가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사랑이야기라고 말입니다. 한동안 해방신학과 민중 신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 오를 때, 많은 기득권층에서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요 3:16에서 그 범례를 찾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해방신학과 민중 신학에서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그리고 변방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주목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신학들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 사회나 교회가 조용해 진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만난 어느 섬 지방에서 목회하시는 50대 목사님은 오히려 더욱 더 양극화 되어가는 시대 상황에 대해서 교회가 눈을 감고 있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무기력하고 자존감조차 챙기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의 눈길을 쏟아 붓고 계시다는 것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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