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37호(2025. 4. 18. 성주간 금요일).
시편 116:13-15.
찬송 46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품성 중 관대함, 자비심, 공정함, 정직함, 준비성은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 반대로 최악의 성품인 탐욕 인색함, 무절제, 방탕함은 돈을 잘못 쓰는 데서 비롯된다. 돈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훌륭한 자질이다. 돈은 삶에 필요한 영양소이자 윤활유이지만, 돈에 탐닉하면 사기 부정과 같은 악습이 나타난다. 악의 뿌리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집착이다. 논이 삶의 목적이 되면 노예처럼 돈에 종속된다.” 윤문원, 지혜와 평정, pp.80-81.
2. “산 희망(10-12절)”과 “거룩한 생활(13-20절)”을 읽었습니다. 이 두 단락을 요약하면 구원과 거룩한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기억하는 성주간 금요일입니다. 기독교의 오랜 전통중 하나는 오늘 금식을 하거나 오락을 금하는 그런 어두운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주제로 하는 가상칠언/架上七言을 묵상하는 특별한 기도회를 갖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을 지탱하는 가장 힘 있는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세계에 널리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처럼 말입니다. 물론 이슬람에서도 2025년도 성지순례일 하즈(Hajj)를 6월 6일 저녁부터 6월 11일 저녁까지 진행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할 말씀은 벧전 1:10-20로, 첫 단락은 우리가 가진 믿음이 영혼을 구원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것을 깨우쳐 주신 분이 성령님이시고, 이를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 또한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말씀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락에서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은총을 간직하고 끝까지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거룩한 삶이란 크리스천다운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결하고 아름다운 삶을 의미할 뿐 아니라, 실제적인 의미는 구별된 삶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의 삶과는 다른 모습을 뜻합니다. 어쩌면 이를 일찍 깨우친 사람들이 바리새파 사람들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거룩한 사람, 곧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바리새라는 말은 주전 135년 요한 힐카누스 통치 때에 처음으로 나타났는데,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하는데 삶의 의미를 둔 하시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사람이라는 표시로, 눈에 띄는 차림새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강조가 지나쳐서 예수님 당시에는 가장 교만한 사람으로 비춰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바리새파의 전성기 때 6천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을 것입니다.
엊그제 동창 몇 분과 오찬을 하면서, 오늘의 우리 교회의 모습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의 하극상은 물론 평신도들에 의해서조차 불신임을 받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목회자인 저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시작하고 끝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출발은 겸손과 충성이었으나, 그 끝은 교만과 탐욕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제가 가끔 인용하는 아프리카 돼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100여 마리 돼지를 몰고 가는 목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의 긴 회초리에 맞으면서 걸어가는 돼지가 있었습니다. 그 돼지는 무리에 섞여서 고분고분 살아가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뒤로 자꾸 뒤쳐지면서 어딘가 있을지 모를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두고만 볼 목자가 아니었고, 목자는 그 돼지의 엉덩이를 회초리로 때렸고, 맞은 후 무리와 합류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돼지가 계속 맞으면서 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 돼지는 자신은 남처럼 살지 않겠다 결심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모험심을 발휘해서 대열에서 이탈, 목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과 탐욕의 자세이고, 불순종의 전형/典型입니다. 거룩한 삶 곧, 남들과는 다르게 살겠다는 의지는 바람직하지만, 교만과 탐욕에 이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겸손과 순종은 너무 평범해서 흥미를 잃을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런 평범한 삶이란 그 자체가 축복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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