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8734호(2025. 4. 15. 성주간 화요일).
시편 116:4-6.
찬송 34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손수건으로 새를 감싸 들어 올리자, 서늘하고 가벼운 몸의 전부가 천 아래로 느껴진다. 반쯤 펼쳐진 날갯죽지들을 모으고 손수건을 한 번 더 감아 비스킷 통 가운데 내려놓는다. 잘 여며도 위쪽이 벌어지며 얼굴이 드러난다.” 목공일을 하는 제주도 친구가 손가락이 잘려 서울로 치료하러 서둘러 올라오는 바람에, 키우던 앵무새 아마가 목이 말라 죽을 것 같다며, 제주도로 가서 앵무새에게 물을 주고 와달라는 부탁에, 비행기를 타고 눈보라를 뚫고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버스를 겨우 타고 집에 당도했을 때는 앞서의 글처럼 앵무새 아마는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그 얘기가 무려 172페이지나 되었다. 한 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한 토막이다. 그런데 앵무새 아마 이야기는 그걸로 끝날까 걱정이다.
2. “능력과 지혜이신 그리스도(18-25절)”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께서 고난당하심을 기억하며, 이른바 고난 주간 화요일을 맞이했습니다. 이 고난 주간에는 우리 인류와 세상을 위해서 속죄양이 되신 주님의 십자가를 주목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엊그제는 미네소타에서 목회하시는 묵상식구 엥글러 목사님께서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축하한다며 전자 카드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병을 앓거나 힘든 일을 겪는 이웃에게는 축하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당하신 고통은 우리에게는 말도 다할 수 없는 은총이기에, 그런 은총을 입고 있는 우리들끼리는 축하의 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양 정서로는 그런 인사말이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는 최고의 축복이 될 테니 말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주님이 짊어지신 십자가를 진지한 마음으로 묵상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저는 대학과 대학원을 같은 곳에서 다녔는데, 그때 하루 첫 30분은 학생회관 안에 있는 작은 기도골방에서 보내기로 결심하고 실천하였습니다. 물론 대학원 시절에는 강의 시간이 들쭉날쭉해서 첫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고, 가끔 빼먹기도 하였습니다만, 그때 그 기도골방에는 십자가에서 생명이 다하신 주님의 십자가로 훗날 알게 되었습니다만, 제목은 <십자가 성 요한의 그리스도>로 스페인 출신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50가 그린 것으로, 영국 글라스고 미술관 소장품이라 합니다. 이 그림을 두고 이 요한 신부님은 “하느님의 두 속성, 우리 가까이 계시는 내재성과, 우리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 차원에 계신 초월성을 표상하고 있다.” 고 해설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요약했습니다. 첫째로 이성적인 헬라인은 십자가를 어리석고 미련하다 생각한다 했습니다. 어떻게 똑똑한 사람이라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바보 같은 죽음이라고 말입니다. 둘째로 율법적인 유대인들에게는 부끄럽고 치욕적이라 생각한다 했습니다. 죄인이 짊어졌던 형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질문을 우리 자신들에게 돌려야 한다고 바울은 암시합니다. 첫째로 영원히 멸망 받게 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어리석고 미련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바보 천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인류의 죄를 기억치 않으시려 깨끗이 지워버리시는 유일한 하나님의 구원행위인 때문입니다. 둘째로 표적만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치와 형벌의 상징일 뿐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보다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이란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래 전에 우리 주님은 아주 적절한 소개를 하셨는데,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눅 11:30) 고 말입니다. 까닭은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의미입니다(No Cross, No Crown).
3. 앞에서 언급한 엥글러목사님은 오는 5월 6-16일 대가족을 인솔하고 한국을 방문하십니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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